나도 '이야기 수집가'다.
수채화 2022/10/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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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안녕
- 김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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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 2022-10-20
: 287
일어나 사진을 찾아봤다. 내가 찍어주지 않아서 나와 비교해 남편 사진이 정말 적다. 앞으로 보고 싶으면 꺼내 보기 위해 사진을 좀 더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보다가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동안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향했던 남편의 사랑에 대해 말을 한다. 그 사람은 귀찮을 정도로 나를 챙겼다. 나는 그 사람이 나보다 아이들을, 나와 아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가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로 나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뒤늦게 공부하는 것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일을 해도 막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족 외의 다른 사람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했다.
“나는 그냥 덤덤해. 한두달 남은 것도 아니고. 3년 반이란 건 평균이 그런거고 사람에 따라 경과가 다르다며. 병원에서 그냥 하라는 대로 하지 뭐. 특별히 애착 같은 거 없어. 다만 당신이 혼자되면 외로울 게 걱정이지.”
“그렇게 해. 내 걱정할 건 없어. 산 사람은 살게 되어있어.”
“앞으로 어떻게 되던 그저 따뜻하게 마음 편하게 살면 돼.”
남편이 아프고 앞으로의 날들이 불확실한데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그의 아픔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다. 어디 그 사람의 아픔뿐인가. 나의 아픔, 손자의 아픔, 그리고 엄마의 가련함이, 내가 모르는 어떤 이의 가난과 질병과 주검들을 가져와 글을 쓴다. 그리고는 “나는 과연 괜찮은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어오곤 했고, 지금도 그렇다.
어제 읽다만 <안녕, 안녕>을 다시 손에 들었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81) 제목에 깜짝 놀랐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백년의 고독>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했다. 오래된 작가가 찾은 인생의 답이 저자 김주련을 통해 나를 깨운다. 도무지 연결되지 않은 것들, 사람, 시대가 없다.
글의 뒷부분,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가 무슨 말인지 언뜻 다가오지 않는데, 제목은 분명하다.
저자 김주련은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에게 불행일 수 있는 일들을 수비해 내 글감으로 갖다
스며, “나는 과연 괜찮은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곤 하는 내게도 기적처럼 환하게 찾아온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이야기를 모으고, 그 모은 이야기를 기록한다. 레오 리오니라는 작가의 작품 <프레드릭>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들쥐, 프레드릭처럼 말이다. 김주련은 역사, 철학 사상 등을 말하는 거대담론, 일상 속에서 먹고 자고 여행하고 병들고 고치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담긴 미시 담론,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가 우리 일상에서 잘 만나야 밀도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나 듣는 이나 같이 즐거워할 수 있다고 한다.(82) 나도 그렇게 거대담론을 수집하고 미시담론을 수집해 이 둘이 잘 만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들이 늘 즐거울 수 없다. 쉼 없는 세상, 인류의 발전이라고 자랑하지만, 실은 끊임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사람은 마치 기계의 한 부속이 되어버린 듯, 닳고 닳아지는 세상이다. 긴장과 절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든 걸 견디고 살아가게 하는 잠시 반짝거리는 한 줌 ‘사랑’에 의해 삶이 이어지고 웃음도 끊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어쩌면 아픈 소재들 속에 화려하게 반짝이지 않을지라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어떤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어쩌면 잘 살아가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고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잘못된 걸까?
“어느 한쪽이 좋고 어느 한쪽이 좋지 않다는 전개가 아니라,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은 채 나란히 배치하여 모든 때가 다 필요에 따라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 김주련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는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씀을 가져와 <모든 때의 모든 아름다움>에 풀어놓은 글 앞에서 생각을 멈춘다.
저자는 노르웨이 작가 리사 아이사토가 쓰고 그린 <삶의 모든 색>이라는 일러스트북을 통해 사람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될 모든 순간이 그 나름의 색으로 각자의 시절을 경축하고 있음을 보았다고 한다.(91)
나 역시 지난 시절 어는 한순간도 내 삶에서 떼어내고 싶지 않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순간, 조금은 고통스러웠던 시간마저도. 그 안의 모든 이야기가 지금 나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철이 들어가며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과거를 재수집한다. 이른 아침 사진첩을 보면서도 나와 가족들의 지난 이야기를 재수집했다.
요즘은 나와 남편에게 남은 분명하지 않고 희미한 그림들을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내 삶을 차분하게 이끌어간다. 그리 힘들지 않다. 문제가 있는데 평안하고, 잠을 자지 못할 줄 알았는데 잠을 잘 잔다. 기도하지 않는데 하나님으로 가득하다. 괜찮다. 나아가 하는 일인가 싶으니 나이 먹는 것도 괜찮다. 진회색이나 백발이 아름답고 주름이 아름답다.
어쩌면 길게 유지될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일 수도 있는데, 혹 모른다는 생각에 생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버킷리스트를 궁리하기도 했다. 여행? 그중에서도 가족들과의 여행?을 생각했다. 그것도 좋다. 그런데 가장 먼저는 그저 병원 가는 길을 그곳에 드나드는 일 자체를 즐기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미리 나가 산책하고 점심을 즐기기. 병원에서 낯선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수집하기. 그것 말고도 병원 가는 일을 즐기는 법이 생각나면 좋겠다. 의외로 남편도 덤덤하니 말이다.
남편이 외출했다. 외출이 작은 내가 정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젊은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 남편에게 나가기를 종용했고,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되고서도 그랬다. 이제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편하고 자연스러워진 지금, 혼자만의 시간도 준비해야겠다. 혼자 창릉천을 걸었다. 유난히 크고 타오를 듯 붉음이 선명한 태양이 막, 산 아래도 떨어지려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도처에 경탄할 것이 있다.
'안녕, 안녕'이 뜨게 해준 눈으로, 내게, 그리고 남편과 많은 이들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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