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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schom님의 서재

한때 동화책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체에 푹 빠져서 그림이 예쁜 동화책만 찾아 읽어보던 때의 유일하게 남은 유산이다. 


돈도 되지 않는 책들을 이사를 가며 고물상에 빨래비누 몇 개를 받고 다 팔았다. 

헌책방에 보내려고 택시를 몇 번이고 타고 왔다갔다 하고 싶지 않았고,도서관은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 책 몇 권을 가지러 오지 않았다. 


이제는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겠다고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책을 폐지로 보내버리고선 대형 중고서점이 시내 곳곳에 생겼을 땐 꼭 나를 위해 준비 된 공간 같았다.

사지는 않아도 고개라도 들이밀어 구경이라도 해 보자 생각했다. 지금도 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할인할 때 아니면 잘 구입하지 않고 보관함에 몇 년째 쌓여있는 책들 눈요기만 할 때가 많은데   그때는 버스 차비 한 푼이 아쉬워 더욱 그랬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똑같이 나는 그 어떤 굳건한 결심이나 각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인간이다.

반짝반짝한 조명 아래 주르륵 늘어서 있는 서가 사이를 거니노라니 이것이 생시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서관]은 그 곳에서 다시 보았다. 

삐쭉빼쭉 빼곡히 진열된 얇은 하드커버의 알록달록 동화책들 중에 눈에 익은 표지가 한 눈에 들어왔고 누가 채갈리도 없는 그 책을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집어서 계산을 끝내고 나오면서도 끝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다 들킨 것 처럼.


같잖게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무슨 성화라도 되는 듯 세워두고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삶을 동경했다.  

마르고 눈 나쁘고 수줍은 많은 아이의 결코 예쁘다 할 수 없는 외모가 일단 마음에 들었고, 이불을 텐트처럼 세워쓰고 잠 들 때까지 책을 읽는다는 메리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으며,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감자칩도 필요 없고, 새 옷도 필요 없고, 

데이트도 필요 없고, 

오직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책이었다.

거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장면은 마치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홈런 타구를 보는 관중의 마음처럼 터질듯 벅차오르니,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1인용 소파에 앉아 아득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찌를둣 높이 치솟아 쌓여 있는 책들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페이지만 대문짝만하게 프린트해 소장하고 싶다.

책에 얼굴을 파묻고도 모자라 책들을 쏟아질듯 담은 작은 수레를 끌며 걸어가는 책 표지 속의 메리는 매우 행복해 보인다. 


이 무아지경의 장면이 내가 책을 대하며 가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의 표상 같이 여겨진다.

하루종일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와 현관에 널부려져 있다 억지로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면 촛농 처럼 녹아버릴 것 같은 몸은 더 이상 내일을 살 수 없을 것 두려움에 나 자신을 추스려야 했다. 그럴 때 펼쳐든 책 속의 메리는 행복하고 걱정도 없으며 안전해 보여서 눈물이 났고, 메리가 질투가 날만큼 부러웠고, 동시에 차가운 골방에도 동화의 밝고 따뜻한 온기가 스며드는 듯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책을 덮고 나면 사라질 환상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행복은 온전히 내 것인 것이다. 

그 행복은 동화를 펼칠 때마다 퐁퐁 솟아 말라붙은 웅덩이를 잠시 적시는 데에 충분하다.  

 

책은 의자 위에도 쌓이고 마룻바닥에도 널렸어요.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어 대자 책 무게에 책장이 무너져 버렸어요. 커다란 책들은 찻잔을 올려놓는 튼튼한 받침대가 되었어요.자그마한 책들은 부지런히 드나드는 어린 친구들의 집짓기 장난감이 되었어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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