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셜록이 내 최애이고 루팽과 그리고 크리스티의 소설이 세상에 전부인 줄 알 때 조르주 심농을 처음 영접하고 막 찾아 읽을 무렵 뭣모르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던) 열린책들 출판본으로 '몰타의 매'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쨍하게 노랗던, 만년 다이어리 같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의 앙증맞은 페이퍼북은 뭔가 이국적인 책 제목과 더불어 더 근사하게 느껴져서 -책의 모든 요소가 다 마음에 들어서- 이런 책은 절대 재미없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하드보일드가 어떤 장르인지 이해했다. 아니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때는 솔직히 추리소설이라는 정글에서 모래 한 줌 집어 세가며 보고 있을 때니 하드보일드니, 사회파 소설이니, 코지 미스터리니, 알 게 뭔가.
내게는 지금도 그렇지만 셜록이 거의 추리소설의 신이었다.
시리즈를 다 읽고도 다른 출판사의 시리즈를 또 찾아 읽었고 번역이 마음에 안들면 쌍욕을 하며 다른 출판사의 시리즈를 찾아 읽었고 모든 출판사의 책을 통틀어 마지막 셜록의 죽음부터는 읽지 않았다. 살아돌아 온다 해도 그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장르가 원래 그런 장르인 것을 아는 지금은 아무런 감정적 충격 따위야 겪지 않겠지만 이제는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으며 그 '모래알 씹는 것 같은' 그 건조한 문체와 주인공의 냉랭한 태도와 그래서 더 잘난 척 하는 마초같은 모습과 마지막 책장까지 다 덮고도 오물처럼 남은 여주인공에 대한 혐오감에 분노로 치가 떨렸다.
그런 전근대적이고 마초적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작가에 대한 증오심만 남아 출판사가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광고를 하고모든 이가 대실 해밋을 모르면 추리소설팬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할지라도 나는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절대 하드보일드와 대실 해밋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더랬다.
지금은 이런 감정이 우습지만 내게는 셜록이라는 세상의 제단에 꾸며진 신성한 성전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지독한 공격으로까지 느껴졌다.
몰타의 매는 그런 애증의 소설이다.
나중에 도서관에 볼 책이 없어(추리소설 한정) 결국 대실 해밋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 때도 몰타의 매만큼은 건너뛰었다.
그 마초같고 별로 정의로워 보이지도 않는 무정한 그런 인간이 유일한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원숭이 나무에 매달리듯 매달려 구원을 비는 여주인공이 너무나 역겨워 줄거리는 희미해져도 그 혐오감은 또렷이 남아있다.
더군다나 그 무미건조한 문체는 이상하게 주인공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 하고 세상에 해결사는 주인공 밖에 없는 것처럼 고독한 영웅같은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하드보일드가 어떠한 장르인지 안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딱히 재밌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꼭 거쳐야할 통과의례처럼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보관함 한구석에 들어있다.
나도 다른 독자들처럼 샘 스페이드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
무역회사 보고서 같은 소설 때문에 난 옹이를 치료하고 싶다.
추앙하고 칭송하는 그 무리에 끼어보고 싶다.
그래서 대실 해밋 전집이 전부 재밌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래서 오쇼네시를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