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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 27,000원 (10%↓
1,500) - 2026-02-26
: 23,192
너무도 유명한 시대를 관통하는 책이 아닌가. 특히 이번 개정판은 앞으로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사실 오역 이슈 등으로 인해 선뜻 손이 가지 않아 '그림의 떡'처럼 바라만 보던 차였다. 이토록 깊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개정번역판을 세상에 내놓아준 김선욱 교수님과 한길사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책은 소장 욕구와 독서욕을 동시에 자극한다. 종이의 질감, 여백의 구성, 활자의 크기까지—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미학적으로 담겨 있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분이 고양된다. 내용의 무게와는 별개로, 책이라는 사물이 주는 즐거움 덕분에 이 묵직한 텍스트를 더욱 '맛있게' 소화하고 싶어진다.
1940년 수용소를 탈출했던 한나 아렌트가 2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예루살렘 재판장으로 향했을 때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유대인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스라엘의 '또 다른 얼굴'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이 책을 다시 펼치는 것은 잔인한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만약 20년 전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 같은 감각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렌트가 집요하게 추적했던 '악의 평범성'에서, 나는 이제 시대를 타고 흐르는 '악의 유동성'을 느낀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기위해 긴 길을 타고 갔던 아렌트의 얼음같은 불꽃이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이 책을 다시 읽고 사유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차이를 지우는" 폭력 때문이다. 과거의 폭력이 지금 다른 형태와 칼날로 자행되는데 우리의 "사유"가 필요한 때이고 과거의 아렌트와 조우하고 그 조우를 돕는 학자들의 손길과 출판되기까지 연결된 흐름이 우리가 끊임없이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 몇일전 딸아이가 보내준 봄의 대곡선이라는 - 별자리와도 같았다.
아렌트의 시선과 글의 흐름이 가진 건조함이 읽는동안 삼켜진 서글픔으로 자국을 남겼다. 이 냉정함이 지금 현재까지도 효용한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잃는것이 많다. 자기비판을 넘어서지 못하는 자들이 여전히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 아렌트의 시각과 뼈를 때리는 각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유의 무능에 기인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 누구
나일상적으로'라는 식의 범위나 빈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없이 살아가는 태도가 일상화된 상태를 표현한다. 그 모습이 너무 뻔해서 진부해 보일 정도의 상태 말이다. 이는 "당신도 상황만 주어지면 악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독립적으로 사유할 수 있고, 비판적 시각으로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살펴볼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렌트가 전제한 생각이다. (역자서문 중)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기위해 움직인 그녀의 행동에 담겨진 울분과 냉정이 우리의 현재를 비춘다.
나는 사유하고 있는가. 나는 올바로 사유하고 있는가. 나는.나는.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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