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 가치관은 알고 보면 마치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항상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어서, 매일 들이마시면서도 그 맛도 냄새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한 저자의 말처럼 나역시 이제야 그 가치관이란게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혼일때와 결혼을 했을 때 아이가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거주지에 대한 선호도란 것이 달라지곤 한다. 미혼이었다면 지하철이 바로 연결된 지상복합에서 살고자 했을 것이다. 아이가 둘이되고 셋이 되면서 층간소음으로 인해 20층쯤에 살던 우리는 1층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커가면서 그와 나는 주택을 생각하고 있다.
미취학 아이들 둘과 함께 런던살이를 시작했던 저자는 아이들이 취학을 한 5년후까지 연결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듯하다. 보행인으로 사는 런던살이 후의 서울살이를 하는 저자의 자동차소유와 주차에 대한 강한 주장이 담긴 몇몇 꼭지들을 보면서 운전자로서 주차장이 없어 느끼는 불편함을 가진 나는 또 반대되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선 자기소유의 주차장 증명제와 같은 것을 지금의 내게 들이민다면 얼마나 울화통이 치밀 것인가. 아파트에서 인정한 1가구 2차량으로 가름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주차장이란 소지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실현불가능하지 않을까.
길이란 공공재가 길이 아닌 주차장이 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손대기 힘들다고 해서 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이미 도시정리가 끝난 런던이나 일본에 기댄 정책을 고스란히 서울에 가져오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회구성원이 모두 초점을 맞춰 개선해야할 부분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만성적 교통체증과 문화유산과 도시생활공간이 엉킨 것을 정리한 오스만남작이 지금의 서울에서 같은 역할을 하란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까. (그도 직선집착이 있었다는 설이)
“무엇이 집인가?” 묻는다면
“당신이 있는 곳이 나의 집”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쓰는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