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 전쟁사, 세계사에 큰 분기를 남겼다. 서방의 오판과 러시아의 편집적 지배욕으로 일어난 전쟁은 한국전쟁보다 더 오래,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독소전쟁을 넘어 비교 불가능한 독자적인 시간의 영역으로 가고 있다.
이 전쟁이 기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전쟁 전후의 한반도의 휴전선 못지 않게 양측 모두 각자의 명운을 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러시아의 압도적인 국력은 xx난 군사력과 경제에 반비례 되어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대군에는 병법이 필요없다고 했던가? 인간존중, 생명존엄이란 단어는 마치 나폴레옹의 불가능 사전에 수록된 것마냥 푸틴은 사람을 갈아넣어가며 우크라이나 땅에서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그런 압도적인 힘을 우크라이나는 드론이라는 한국인에게 있어 장난감과 같은 물건으로 수많은 러시아군과 북한군을 살상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FPV드론에 대항하여 재밍 장치를 운용했고, 그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재밍 장치에 대항하여 케이블 장착 드론을 운용했고, 러시아군도 케이블 장착 드론을 운용하자, 우크라이나군도 케이블 선을 곳곳에 뿌려 러시아군의 케이블 장착 드론의 공습을 막아내고 있다.
케이블 장착 드론은 러시아군의 재밍장치의 방해전파에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선의 길이만큼, 배터리 용량과 탑재되는 무기의 화력도 줄어드는 단점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군은 AI 기능이 탑재된 드론을 통한 또 한번의 혁신으로 전장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제 전쟁은 인간이 주도하는 방법이 아닌 인간의 명령하에 AI가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무인차량과 드론이 주도하는 무인 전장이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벌어졌다. 적잖은 러시아군이 살상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포로가 되었다.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변형되었지만, 실제로 나온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터미네이터 영화의 AI, 스카이넷은 인간에 대한 멸시로 전쟁을 일으켰다면, 지금 전쟁에 나온 병기들은 AI로 인해 고도로 학습된 데이터와 상대에 대한 인간의 살의가 접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전쟁이 전쟁에 관심이 없는 다른 민간인들에게도 인상이 박힐 만큼 워낙 길고 처절하며, 각종 신무기로 서로를 살상하기에 AI가 이제서야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지만, 이 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큰 뼈대로 하되,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기 전까지 아르메니아-아르젠바이잔 전쟁, 이후의 이스라엘-이란 분쟁, 인도-파키스탄 공중전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AI를 통한 전쟁의 주도권이 착실하게 잡아감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서서히 진행되던 AI와 군사분야의 접목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폭제가 되어서 더더욱 활성화가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AI에게 인간을 죽이는 법을 빠르면서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윌 스미스의 기괴하게 스파게티 먹는 영상이 불과 지금으로부터 3년도 안된 2023년 3월 23일에 레딧에 올라왔다. 그러나 막대한 데이터 습득으로 2025년 10월에 이르러선 실제 인물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파게티를 먹는 영상으로 발전했다. 단순히 물체식별만 하던 AI는(사실 이것도 대단한 것이다.) 이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는 작전도 고안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장군들이 AI가 짜준 전략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비굴해 보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AI의 전략, 전술적 성숙도는 중국 춘추시대의 손자와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기 좋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도 나왔다시피, AI에 맹신하는 것은 파멸로 가져올 수도 있다. 내가 구글 제미나이나 ChatGPT를 이용하면서 느낀 것은 AI는 인간이 가진 것 이상의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말이다. 정보와 사실에 인간의 편견이 오염되어 있으면, 그것은 사실 안쓰는게 옳다. 사법에서는 이를 독수독과 이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이 존재하는 사법 체계와 다르게 AI의 세계는 무법의 영역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지나친 AI의 학습력을 두려워한 이들이 OpenAI의 샘 올트먼을 쫓아냈다가 도리어 다시 돌아온 샘 올트먼에 의해 쫓겨나고, 그리고 AI는 어떠한 제약도 없이 확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지금의 AI는 전쟁에서 인간이 가진 증오와 폭력도 데이터화 하여 학습하고 있다. AI는 태어나면서부터 지성을 가진 존재는 아니다. 지금 나온 AI들은 인류가 만든 수많은 문화적 유산과 지식을 게걸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습득하며 인간보다 빠르게 진화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하는 무장 드론에 탑재된 AI들은 지난 몇 달간 아니 몇 년간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장데이터를 습득하여 그것을 토대로 러시아군을 살상하고 있다. 그 전장 데이터들은 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살아남은 이들이 상대방에게 보낸 증오와 살의를 디지털 신호로 재배열한 것이다.
아무리 두꺼운 벽에 숨거나 빗발같은 총알 세례를 퍼부어도 AI 탑재 드론은 사전에 탑재된 데이터를 통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명을 살상한다. 나온지 며칠 밖에 안된 이런 드론이 수십년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을 끝장내는 장면을 보면 구약 전도서에 언급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글귀가 생각난다. 이제 평범한 사람이 명예와 충성, 용기를 가지고 전장터에 나가는 시절은 이제 끝나간다는 생각도 든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살육의 집약체인 AI 무인병기 하나면 100인의 몫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버트런드 러셀은 '개가 아무리 유창하게 짖는다고 해도, 자기 부모가 가난했지만 정직했노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치관은 없지만, 놀랄정도로 고기능적 사고를 하는 AI의 이런 발전속도를 보면, 자신의 말을 조금 익살스럽게 변형하지 않을까 싶다.
AI가 없던 시기에도 우리 인간은 핵전쟁의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 할 뻔 했다. 그때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의 판단과 결정으로 우리는 종말의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그것이 당사자의 냉철함인지 나이브함 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은 찰나의 순간의 망설임 덕분에 다양한 선택의 폭을 고려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AI의 과도한 과단성과 자신감은 어떠한 주저함도 없어 보인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지전능한 AI 앞에서 무력해진 꼭두각시가 되지 않을가란 생각도 든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창조의 즐거움도 AI에게 뺏기지 않을가란 생각도 들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AI와 군사분야의 접목을 고려하기 전에 우리의 주변도 AI에게 그 못지 않게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재작년까지는 업무에 AI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다 AI를 쓰지 않고 있는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인류가 또 하나의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창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80년 전 로스앨러모스의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은 공포의 유형이지만, 21세기의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은 무형의 편리함이다. 80년 전의 과학자들은 자기가 만든 것을 보고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21세기의 과학자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AI에 대해 별 공포를 가지지 않고 오히려 친근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떤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AI를 경계하는 것도 일리가 있고, AI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일견의 타당한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군사학적인 측면을 통해서 이책은 AI를 다루고 있지만, 완독한 이후에는 AI의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AI는 무섭도록 진화를 하고 있다. 생명의 진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를 보면서 우리는 AI에게 어디까지의 선을 허용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순간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