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건시대 제왕, 태어날 때부터 핏줄의 꼬리표를 달고 나온 그들도 왕좌에 오르기 전까진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제왕의 자리는 하늘이 내린다고 한다.
실제로 왕권을 좌우하는 건 조정의 실세들이다.
가령 날 때부터 다음 보위를 계승하도록 내정된 왕자가 조정 권력을 틀어쥔 세력들의 눈 밖에 나면 그는 절대 용상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이 경우 결국 새로운 왕관의 주인이 되는 건 또 다른 왕족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물론 애초부터 제왕의 그릇이 못 되는 인물이 운 좋게 자리나 지키다 가는 경우도 있다.
무능한 군주가 선왕의 위업을 깎아먹는 폭군으로 낙인 찍혀 권좌에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봉건왕조 체제를 유지 할 수 있었던 건 왕을 도와 국정을 이끌었던 참모들의 역할이 컷다.
조선시대 참모들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정도전이 아닐까 싶다.
정도전은 고려 말 혁명가로 시작해 혁명을 성공시킨 후에는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생애를 마쳤다.
그가 태조를 도와 구상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500년 이상 왕조가 존속하는 기반이 되었다.
조선 전기 킹메이커형 참모들로는 태종의 하륜, 세조의 한명회, 신숙주 등이 대표적이다.
세종은 자신을 돕는 참모형 인재들을 적극 발탁하였다.
천민 출신 과학자 장영실, 명재상 황희, 집현전 중심의 성삼문 등이다.
성종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서거정, 성현, 김종직, 김일손 등을 등용하였다.
연산군이나 광해처럼 반정에 의해 쫓겨난 왕에게도 참모는 있었지만 왕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참모였다.
임사홍, 장녹수, 김개시 등이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위기 시기에도 왕을 보좌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인 참모들도 있었다.
유성룡처럼 영의정으로서 전시 정부를 이끌어 간 인물, 조헌처럼 의병장으로 직접행동으로 나선 인물, 이덕형과 같이 외교적 능력으로 위기를 해결한 인물, 장만과 같이 선조에서 인조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인물도 있었으며, 최명길처럼 명분론보다 실리론을 관철시켜 병자호란의 희생을 막는데 공헌한 참모도 있었다.
피폐해진 민생 경제 회복을 우선적으로 추진한 참모로는 이산해, 이원익, 김신국, 조경 등이 있다.
조선 후기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왕의 참모이면서 당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한 참모들로는 인조에서 숙종에 이르는 시기에 최고의 영향력을 미쳤던 송시열, 송시열의 라이벌 허목, 숙종 때 정치공작 달인 김석주, 현실 가능한 정책을 제시한 소론 정치가 최석정 등이 있다.
또 정조의 대표적인 참모 정약용 과 <당의통략>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당쟁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건창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왕조 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도래 했지만, 반복이라는 역사의 속성 앞에 조선시대 명참모들이 갖추었던 덕목들은 의미를 지닌다.
권력의 핵심에서 성군과 폭군의 치세를 가른 참모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역사 속에 나타난 인물들의 이면을 좇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선택과 시대적 요구 사이의 관계를 관찰함으로써 오늘날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침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