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감상과 해석을 바탕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세 번의 전미도서상까지. 거장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펼치기 전 기대는 충분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낯선 기분이 나를 붙잡았다.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누군가의 생각이 생겨나는 과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문장은 끝없이 길어지며 인물의 관찰과 여담, 혼잣말 같은 평론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카버의 절제된 문장이나 체호프의 단편을 읽을 때처럼 줄거리가 손에 잡히는 감각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다 어렵기만 했던 건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야, 나에게는 분명 '열린 문'과 '닫힌 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린 씨를 찾아서》, 《노란 집을 떠나며》, 《은접시》에는 독자를 붙잡아 주는 손잡이가 있었다. 추적과 망설임, 절도라는 사건이 이야기를 이끌고, 인물의 내면은 그 궤적을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서 벨로의 긴 문장은 사건을 덮는 장식이 아니라, 사건이 남긴 여운처럼 읽혔다.
반면 《옛날 방식》이나 《모스비의 회고록》에서는 사건보다 의식의 흐름이 이야기를 대신했다. 붙잡을 손잡이를 찾으며 문장 사이를 헤맸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또 다른 생각과 여담뿐이었다.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라는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두 부류를 나란히 놓고 보니 비로소 이해가 갔다. 벨로의 긴 문장은 결함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밀도를 통째로 담아내려는 장치였다. 다만 사건이라는 뼈대 위에서 작동할 때와 의식 자체가 서사가 될 때, 독자에게 다가오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한국어 번역의 특성상 문장이 한층 더 빽빽하게 느껴졌을 가능성도 있다.
책 표지에는 "포크너가 천둥이라면 벨로는 번개"라는 찬사가 실려 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숨이 가쁘고 불친절하게만 느껴졌던 문장들이 사실은 한 인간의 삶을 압축해 놓은 고농축의 문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은접시》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 남는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붙잡으려는 아들의 몸짓은, 어린 시절 은접시를 훔치던 아버지의 손을 붙잡으려 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벨로가 남기는 것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몸이 끝내 잊지 못하는 사랑의 기억이다.
벨로의 소설은 끝까지 나에게 친절한 소설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불친절함 속을 끝까지 걸어간 끝에 만난 한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