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평범한 27세 여자가 독일의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 <차이퉁>의 왜곡된 기사 때문에 인격 살인을 당하고, 결국 기자를 살해하게 되는 '이야기'. ('소설'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이 이야기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라는 제목과,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라는 부제,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롭게 꾸며낸 것이다. 저녈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할 일일 뿐이다."라는 모토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 '모토'가 의미심장하죠?
이야기 속 독일 최대 일간지 <차이퉁>은 결국 현실의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를 겨냥한 것이라고 오히려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네요.
<빌트>지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으로, 매일 30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빌트>지는 스스로 '정론지'라 칭하는 우리나라 메이저 신문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2년 전까지 여성의 누드사진을 1면에 게재하는 '전통'이 있었을 정도로
(2012년, 시대에 발맞춰 이 전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도 1면을 제외한 다른 면에는 누드사진을 싣고 있죠)
가십과 저질스런 언어, 감정적인 표현으로 비판받는, 그러면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아이러니한 신문입니다.
가십, 연예뉴스에 치중하는 우리나라 타블로이드지와는 다르게, 뜨거운 정치 뉴스도 활발히 보도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특이해 보이는 부분이죠.
작가 하인리히 뵐은 1975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작품을 통해서 <빌트>지에 정면으로 일격을 가했는데요.
<빌트>지와 하인리히 뵐의 묵은 악연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유럽에서 '68운동'이라고 불리는 청년들의 시민운동이 일어났죠.
이 청년들 중 일부는 '시위를 위해서라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과격한 사상에 휩싸입니다.
이들의 지도자 두명의 이름을 따 '바더-마인호프 그룹'이라고 부르는데요.
백화점에 방화하는 등 거의 테러집단으로 변질돼 버립니다.
그러던 중, 1971년 독일 한 지방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일어납니다.
<빌트>지는 특별한 증거도 없이 이 사건이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어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하인리히 뵐은 <빌트>와 대척점에 있는 <가디언>지에 글을 써 <빌트>지의 보도방식을 비판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빌트>와 하인리히 뵐의 싸움.
결국 하인리히 뵐은 '테러의 벗' '범행의 지지자' 등등 갖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
테러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증거없이 보도하는 방식을 비판한 것 뿐인데 말이죠.
다음해인 1971년, 하노버 공대의 교수인 '페터 브뤼크너'라는 사람이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일원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언론(<빌트>지가 중심이었겠죠)의 집중포화를 맞고, 교수직에서 쫓겨나기까지 합니다.
나중에 죄가 없다는 사실이 인정됐지만, '인간 이하'라는 비난까지 받은 고통을 보상받을 수는 없었겠죠.
바로 이 '페터 브뤼크너' 교수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서, 하인리히 뵐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씁니다. 이 작품을 '소설'이라 하지 않고 '이야기'라고 지칭하는 이유. 바로 꾸며낸 가상의 '소설'이 아닌 실제 우리 사회에 있는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이 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이야기'로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차이퉁>의 기자를 자신의 집에서 칼로 찔러 살해합니다. 그리고는 제 발로 경찰에 찾아가 자수하죠. 7시간이나 생각해 봤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면서요.
이야기는 나흘 전인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소 성실히 일하고 남자에게는 뻣뻣해서 '수녀'라는 별명까지 있는 평범한 20대 여자 카타리나 블룸, 지역 축제날 자신의 대모라고 여기는 친한 아주머니네 집에 가 파티에 참여합니다.
파티에서 정말 그녀로선 흔치 않게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밤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요.
알고보니 그 남자는 은행 강도로 수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은행 강도로 알려진 것도 과장이고, 사실 탈영병일 뿐이었죠)
그녀의 집에 경찰들이 찾아와 조사를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차이퉁>의 1면은 카타리나 블룸의 사진과 기사로 뒤덮입니다. '강도의 약혼녀'라는 칭호와 함께 그녀의 사생활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그들이 원하는 가십을 위해 왜곡된 그녀의 정보가 독일 전역에 진실인 양 퍼지게 되죠.
어릴적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 경범죄로 수감된 오빠 이야기, 개인적인 재산 내역까지 온 나라에 떠벌려지고,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아 헤어진 전남편과 관련된 이야기는 '은행강도의 애무에 취해 선량한 남편을 버린' 악녀의 이야기로 변해버렸습니다.
<차이퉁>지가 사실을 왜곡하는 방식. 몇 가지 장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카타리나를 가사관리인으로 고용하고 있던 고용주이자, 그녀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던 변호사 블로르나. 그가 <차이퉁>의 기자를 만나 몇마디를 나눈 다음날, 아침신문을 보는 장면입니다.
'카타리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는 자신의 표현에서 <차이퉁>지가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라는 말을 만들어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카타리나를 가사관리인으로 고용하고 있던 전 교사 부부는 기자에게 실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타리나가 과격하다면, 그녀는 과격하리만치 협조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적입니다. 내가 그녀를 잘못 보았나 보군요. 그런데 난 40년간 경험을 쌓은 교육자요. 사람을 잘못 보는 일은 거의 없는데요."
이 말이 <차이퉁>지에 어떻게 실렸는지 볼까요?
(카타리나의 행동에 대해)"특별히 예상 밖"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관계에서 과격한 한 사람이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군요." 라고 말했다.
이런게 왜곡을 하면서도 <차이퉁>의 기자는 이런 식으로 변명합니다.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 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독일 전역에 '강도의 정부'로 소문난 카타리나 블룸에게 정체를 알수없는 성희롱성 전화와 협박편지가 쏟아지고,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카타리나의 어머니는 페인트공으로 변장하고 병원 몰래 잠입한 <차이퉁> 기자를 만난 이후 숨을 거두고 맙니다.
카타리나를 도와주던 블로르나 변호사 부부의 삶도 <차이퉁>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던 부인 투르데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그들의 넉넉한 경제적 여유에 근거없는 질시를 조장하죠. <차이퉁>지에 실린 부부의 사진 아래 적힌 설명입니다.
한때 "빨갱이 투르데'로 알려졌던 이 여자와 이따금 '좌파'로 통하는 그녀의 남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호화 빌라의 수영장 앞에서 부인 투르데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고소득의 산업체 변호사 블로르나 박사.
이 사건이 점점 커지자, 블로르나 부부도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합니다. 그러자 마치 고소하다는 듯 <차이퉁>지는 사건과는 상관도 없는 그들의 고급 승용차를 신문에 내보내며 이렇게 쓰죠.
"빨갱이 변호사가 서민의 차로 바꿔타지 않으면 안 될 날이 언제쯤일까?"
여기에 실세 정치인의 비열함도 끼어듭니다. 블로르나 변호사의 친구인 정치인 S는 몇 년 동안이나 카타리나에게 치근덕댔습니다.. 억지로 자신의 별장 열쇠와 비싼 반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카타리나가 사랑에 빠진, 은행 강도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그 남자가 카타리나가 가지고 있던 열쇠로 S의 별장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S 역시 이 사건에 휘말릴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S는 <차이퉁>지에 압력을 가해 카타리나를 또한번 짓밟고 혼자만 빠져나갑니다.
<차이퉁>에는 "카타리나 블룸은 좌파 그룹의 지령에 따라 보수 정치인 S의 경력을 파괴해야 했을 것이다"라는 기사가 실립니다.
어릴적 돌아가신 카타리나의 아버지까지 공산주의자였다는 기사도 나옵니다. 블로르나 변호사는 기자에게 이 말을 했다는 신부를 찾아가죠. 신부에게 사실을 캐묻자 나오는 대답입니다.
"나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냄새를 그냥 맡았다. 당신은 가톨릭 신자인가? 가톨릭 신자라면 순종의 의무를 다하라"
근거 없이 권위를 내세우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이단자' '빨갱이' 낙인을 찍는 모습이죠.
<카타리나 블룸의 읽어버린 명예>라는 이야기 속에는 가십을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위해 카타리나의 인생을 왜곡하는 언론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빨갱이' '좌파' 낙인찍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아직 통일 전인 1970년대 서독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졌나 봅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주고, 또 어떤 일이 사실(혹은 '팩트')이어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이야기를 읽고 나면, 일단 이렇게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들에 화가 납니다.
그리고 또 한번 생각하면, 언론의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혼란이 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과장된 부분,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에야 겨우 '진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