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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박조건형.김비
  • 14,220원 (10%790)
  • 2018-09-10
  • : 363

 

 

우스꽝스럽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삽화와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는 내용으로 채워진 수필집이다. 그림 그리는 남편과 글을 쓰는 아내, 예술가 부부의 일상 속 이야기이다. 평범한 부부는 일상의 모습을 같이 경험하고, 서로의 다른 경험의 이야기를 꺼내놓지만, 다른 이야기가 아닌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다. 작은 것에 만족을 하고, 나보다는 너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작은 감동을 준다. 오랜 시간 앓아오고 있는 우울증에 최근에 받은 뇌수막종 판정까지 남편에게 다가온 시련은 두 부부를 더 사랑하게 하는 별것 아닌 것들 중의 하나다.

 

마음껏 사랑을 즐겼다. 여섯 살의 나이 차이를, 그보다 더 넘기 힘들었을 태생의 한계를 서로 알고 있었기에 순간순간의 사랑을 온 힘을 다해 만끽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느끼면 느낄수록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겠구나’라고 깨달았고, 그래서 더 치열하게 사랑했다. 싸우고 토라질 시간도 나에겐 낭비였다. 사랑만으로도 모자랐고, 나에게 사랑이란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남자라면, 그것만으로 족했다. 지구별에 하나뿐인 사람을 마침내 만난 것처럼, 나는 그렇게 사랑했다. - P. 57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사랑은 늙어가고, 사랑이란 원래 변하는 거라고 인정해 버리면 간신히 붙들고 있던 그 모든 사랑의 기억마저 훼손되는 것 같기 때문에, 방법은 없다. 매일 그 사람을 새로이 사랑하는 수밖에. 기억하고 쓰고 그리며 내일 다시 또 사랑해야 하겠구나. 늙어가는 우리 사랑을 끌어안는 수밖에. - P. 70

 

다듬어진 채소, 다듬어진 생선, 바로 쓸 수 있도록 포장된 식자재가 겨우 몇백 원, 몇천 원으로 유통되니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노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격표 너머에 숨어 있을 누군가의 땀이다. 너무 쉽게 돈으로 치환되더라도 여기 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을 무수히 많은 노동의 시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 P. 99

 

눈물이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그저 신랑의 손을 오래도록 쓰다듬었고, 여러 번 끌어안았다. 큰 굉음을 내며 우리를 지나친 이 삶의 의미를, 결코 잊지 말자고, 우리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자고, 서로를 토닥이고 보듬어 안고 한참을 그랬다. - P. 278

 

이제 나는 삶을 말할 때, 죽음을 말할 때, 그 어떤 순간에도 가벼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다가온 시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어제의 삶에서 한 발 나아간 시간을 살고, 내 몫이었던 시간을 무엇으로든 기록하는 것.

‘기록’이란 시간을 거역하는 일. 그것만으로 우리는 비로소 시간이란 삶과 나란히 서서 당당하게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우리의 시간을, 아름다운 생의 그림들로 채워 가면서. - P. 283

 

킥킥거리면 읽을 수 있는 위트 넘치는 얘기들을 별것도 아닌 것처럼 전해주고 있지만, 예술가 부부는 책을 읽는 동안 재미와 감동 그리고 용기를 주고 있다. 높은 곳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는 없기에 가끔 옆과 뒤를 바라보면 사소하게 지나쳐온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작은 휴식과 같은 책이다.

 

#별것도_아닌데_예뻐서 #박조건형 #김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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