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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애벌레님의 서재
  • 그림 속 경제학
  • 문소영
  • 14,850원 (10%820)
  • 2014-06-26
  • : 1,587

 

시작부터 엉뚱한 소리일는지 모르지만 최근 교육계에서는 '창의적 융합 인재 양성'이 관심 용어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각 분야의 전문성은 별개의 영역이 아닌 융합과 조화의 영역임을 나타내는 말로, 가령 전혀 다른 분야로 인식되어온  과학과 예술, 철학과 공학이 결합하여 새로운 창의적 생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울을 이용한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을 광고하는 글을 쓰거나 거울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과 관찰 모두가 거울의 원리를 이해하는 전반적인 과정으로 융합 교육의 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과학 수업인지 작문 수업인지 미술 수업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결론은 겨울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주된 목적이 된다.

21세기 창조 경제 시대에 지식과 기술, 예술이 만나 이루는 융합형 인재는 어쩌면 다변화되고 세분화되는 시대에 또 다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재 유형이 아닐까 싶다.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없지만 저자에 대해 굳어진 이미지가 내게는 위에서 언급한 융합형 인재와 흡사하다. 책으로 만나기 전 저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을 비밀스럽게 출입하던 방문객인지라 그간 저자의 그림 소개를 줄기차게 읽어왔기에 그의 해박한 인문학 지식과 그림을 풀어가는 문장력에 탄복하고는 했는데, 이번에 출간한 <그림 속 경제학>을 통해서는 저자의 또 다른 전공 분야인 경제학 풀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전문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역사와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배경에 숨겨진 명화를 찾아내 맛깔스럽게 소개하는 그의 필력은 주말에 가까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도 찾아가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다미디어에서 출간된 <그림 속 경제학>은 언뜻 낯선 조합처럼 보이는 두 영역을 저자 특유의 문체인, 합리적 사고 방식이 빚어내는 정갈한 언어로 미술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는 당대의 세태는 물론이거니와 숨어있는 경제학코드를 알기 쉽게 풀이해낸 책이다. 모든 예술이 당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는 하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 삶의 양식이 바뀌었기에 들여다보지 못한 구석도 있을 것이며, 작가가 은밀하게 처리한 탓에 전문가가 아니라면 보지 못하는 구석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내게는 이 책이 후자의 경우에 더욱 속하는 것으로서 저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만큼 의외의 숨겨진 구석이 많아 호기심이 비례적으로 작용한 책이기도 했다. 차례만 훑어보더라도 일단 구미가 당긴달까? 예감은 종합적 판단을 전제로 하기에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중세의 종교그림부터 현대의 벽화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상황별, 사상별로 이슈가 되었던 작품들을 토대로 경제용어와 재미있는 미술사를 섞어가며 풀어가는 이 책은 총 12 파트로 진행되는 미술사 수업인 동시에 경제학 강의이기도 하다. 청강생이 되어 12파트를 수강하는 기분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때로 오래도록 시선이 머무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때로 밑줄을 긋게 만드는 구절이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해 준다.

 

 

Part 1 에서 다루고 있는 지오토 디 본디네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 중에는 인류 구원의 상징인 예수가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그림이 있어 온화하고 자비로운 예수의 이미지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선 경험을 안겨준다. 유대인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유월절(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 제사를 위해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성전에 모여 외국 화폐를 성전 반세겔 은화로 바꾸는 가운데 환전이 성행하게 되었으며, 흠없고 순결한 제물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축상들의 가격 횡포가 극심하게 이뤄지던 풍경을 목격한 예수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이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안에서 저자는 당시 서민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독점과 담합의 실체를 읽어내며 제물용 가축과 성전세용 환전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만큼 가격 변화에 지극히 비탄력적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분노한 예수의 표정 하나에, 채찍을 휘두르는 손짓 하나에, 쏟아지고 흩어지는 동전과 인파들의 동작 하나에 독점과 담합원리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묵과하고 뇌물을 챙기는 부도덕한 종교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공정거래법이 등장하게 된 바탕에는 이러한 인류 역사의 진행이 있었음을 그림은 증언처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자'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이야기를 그린 얀 요세프 호르만스의 그림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어 대금업에 대한 당대인들의 부정적 시각을 그린 히에로니무스의 <죽음과 구두쇠>를 통해 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구두쇠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도 돈자루에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혼 구원과 물질의 세속 사이에서 오가는 심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의 대부업계 또한 여전히 높은 이자율로 인해 절박한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삶의 부담을 가중시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합법적 사채업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Part 3 '여왕은 지구본 위에 손을 얹었다'는 제목부터가  대항해시대를 통한 식민지 개척과 중상주의 정책을 자동적으로 연상시킨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여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를 그린 <아르마다 초상화>에는 화려한 장신구로 꾸며진 위풍당당한 여왕의 모습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부분으로 지구본에 살짝 손을 얹은 부분이 있다. 당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각 자료라 할 만한 이 그림에서 여왕이 손으로 덮은 북아메리카 동부의 한 지역은 나중에 여왕의 별명이 된 '버진 퀸'을 따서 '버지니아(Virginia)'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또한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영국과 에스파냐의 범선들이 보이는데 당시 바다를 가로지르던 무역상들이 국가와 군주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생활과 밀접한 항구 풍경을 화가들에게 자주 주문했다고 한다. 고전주의적 풍경화의 대가인 클로드 로랭의 < 빌라 메디치와 항구 풍경>은 웅장한 돛대의 배가 정박한 해안가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을 그리고 있어 대항해 시대의 경제적 변화와 부흥을 절감케 한다. 한편 대항해 시대가 낳은 활발한 교역과 중상주의는 국가 간 식민지 쟁탈전의 문제점을 낳기도 했으며, 유럽의 서민들 또한 낮은 임금과 비싼 상품 값으로 인해 중상주의의 폐해에 시달려야만 했다. 일반 국민의 부가 아닌 절대군주의 부와 소수의 특혜 권력층을 만들어낸 강력한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은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경제성장의 대명사가 돼버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기도 했으니 그림 한 장에 담긴 경제학적 속뜻은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Part 5에서는 프랑스 왕 루이 15세를 사로잡은 여인을 그린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그녀의 주치의였던 <프랑수아 케네>의 초상화를 통해 계몽주의와 중농주의를 살펴보게 된다. 단순히 아름다운 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만을 엿보는 것이 아닌, 초상화 뒤로 보이는 백과사전과 지구본, 손에 들고 있는 악보를 단서로 그녀가 한낱 왕의 정부가 아니라 당시 많은 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한 여장부였음을 드러내준다. 케네는 그녀의 주치의로서 의학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관심이 많아 계몽주의 시대에 농업, 제조업, 상업 사이의 자연스런 경제적 상호작용과 순환관계에 주목했으며, 이후 퐁파두르 부인의 후원으로 중농주의 학파를 창시하게 된다. 무역업을 통한 금과 은의 획득이 아닌 생산에서 부가 창출된디고 믿었던 중농주의 사상과 되도록 정부 간섭과 규제를 줄이고 내버려두라는 자유방임주의는 이후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밖에도 산업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한 증기기관차의 발명을 매력적으로 나타낸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속도>나 우리에게 인상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클레드 모네가 그린 <생 라자르 역> 과 같은 그림은 현대인인 우리에게 일상적인 경험인 기차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속도의 경험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계와 분업이 가져온 속도의 혁명만큼이나 몸으로 체험하는 교통수단의 변화는 수증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들어오는 역에 빽빽하게 모여있는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읽어내게 한다.

 

어디를 먼저 펼쳐 읽든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 그림 속 경제학>은 책의 앞부분인 추천의 글에서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경제는 물질적으로, 미술은 정신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영역이라 말했듯이 이 두 영역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색다른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책에 담긴 수십 편의 그림만 물끄러미 바라봐도 시대와 소통하는 기술이 반쯤은 생길 듯한데 그림 속에 담긴 경제학적 메시지까지 읽어본다면 예술과 경제학이 결합해 이뤄낸 당대의 풍속을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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