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최인훈의 ‘광장’, 김만중의 ‘구운몽’,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정지용의 ‘정지용선집’, 고전소설 ‘춘향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비롯해 기타등등.
읽고 싶게 만드는 목록이 한가득이다. 선물용으로 포장된 과일 바구니의 탐스러움처럼, 달콤하고 상큼한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는 과일향처럼 EBS 명강사와 함께하는 SKY 고전 100선 <대학으로 가는 길>은 마치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풍성하고 달콤하게 담고 있는 선물바구니 같다. 이미 읽어본 책이든 제목만 들어 익숙한 책이든, 아예 제목조차 낯선 책이든 먹어본 과일부터 안 먹어본, 또는 흔하게 맛볼 수 없는 과일이라도 입맛에 맞게 골라 먹듯 책의 어느 곳을 펼쳐도 맛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출판사 ‘비행청소년’의 야심작답게 열린 시각과 발칙한 상상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비행(飛行)하는 청소년 교양 시리즈물로 나온 고전안내 서적이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는 해도 쉽사리 삼키기 어렵듯 고전이 삶의 지혜를 높이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채우는 데 시공을 뛰어넘는 교양서적이라고는 해도 쉽사리 소화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흥미위주의 가벼운 글이나 자기계발 류의 실용서적이 난무하고 있는 시대에 짧은 독서력으로 고전을 대하기에는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책 선택에서부터 읽기 방법까지가 만만치 않다. 그것은 고전이 담고 있는 의미가 단순히 문자적 해석이나 줄거리 요약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시대의 역사와 사상적 흐름, 인간의 근원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에 다가서는 앎과 깨달음에 기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전이 당대에만 머물지 않고 시공을 초월해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 또한 같지 않을까? 시대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상황과 배경은 달라져도 본질의 유사성에는 변함이 없는.
고전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강조하지 않아도 고전 읽기의 필요성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바, 특히나 대한민국 10대들에게는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예문으로 출제되는 고전 지문을 보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독서와 토론, 논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적 요구에 과연 교과공부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에 고전 읽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시간적 여유는 둘째치고라도 어떤 책을 무엇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할지 몰라 호소하는 독자들에게 EBS 수능교재 집필진들이 모여 공동으로 펴낸 <대학으로 가는 길>은 학생들에게 궁극적인 대안은 아닐지라도 현실적 융통성으로 양질의 훌륭한 길라잡이가 돼주리라 본다. 굳이 입시를 염두에 둔 학생이 아니더라도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한 권으로 만나보는 동서양 핵심 키워드로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전통과 역사가 숨 쉬는 여행길에서 만난 친절하고도 박학다식한 안내자처럼 말이다.
전체 4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문학’을, 도전과 성찰, 시간 속 인간들에 대한 탐구 면에서 ‘역사’를, 사회를 바라보는 합리적인 눈으로는 ‘과학’을, 끝으로 사실과 현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 영역인 ‘자연과학’으로 나누어 총 100권의 고전을 소개한다. 작품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도록 작품 설명에 앞서 본문의 일부를 소개하고 있으며,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나 창작 동기, 당대의 유행사조( 또는 사상의 흐름), 책이 지닌 현대적 의미와 가치 등을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전달한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훑어본 목록에 한국 고전이 무려 23권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반갑고도 흐뭇한 심정이 들었다. 고전을 지나치게 서양문화와 사상에 치중한다거나 동양고전 역시 중국고전에 치우쳐 생각하기 일쑤인 독서풍토에 우리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 속 빛나는 고전을 다수 품고 있음에 반가웠다. 내 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바깥 것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추종하는 습성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계하는 차원으로서도 말이다.
문학을 알아갈수록 고전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철이 들수록 인생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재밌는 것은 고전이나 인생이나 어려울수록 깊이의 참맛을 제대로 알아가는 재미 또한 황홀하다는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그저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필수코스로써의 고전 해설서가 아닌,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서 삶의 바른 이치를 깨달아 가는 길잡이로 활용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