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자들의 동병상련이 빚어내는 담담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늑대를 구한 개>는 한때는 승자였다가 현재는 패자가 된 실직 변호사와 폐기처분되듯 버려진 경주용 개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힐링이 되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는 실화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동물이 단순히 애완용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이 있음을 감정의 과잉됨 없이 진솔한 고백으로 들려준다.
한때는 잘 나가는 변호사였으나 만성 척추통증으로 인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데다 직장도 잃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게 된 ‘울프(저자 이름)’는 크레이트(철창)에 갇힌 채 경주용 개로 훈련돼 앞으로만 달릴 뿐 계단도 잘 못 올라가는 개 ‘카밋(comet)’을 운명처럼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상황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개를 입양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기에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울프는 이내 상업논리에 따라 쉽게 버려지는 경주용 개로 키워진 그레이하운드 종 ‘카밋’에게 이끌려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인다. 화려했던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더 깊고 애틋했던 것일까? 울프와 카밋은 사람과 동물의 주종 관계, 상하 관계를 뛰어넘어 깊은 정을 나누는 교감의 대상으로 발전해나간다.
그러나 정상적인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울프의 불안감은 이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물론 주변과의 사회성에도 균열이 생기게 되자 자기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가두는 삶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학적 생각에 빠져 강박증 환자처럼 구는 울프에게 지칠 대로 지친 아내는 결국 이별을 통보한 후 떠나버리고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한없이 추락하는 울프 곁에는 오로지 카밋만이 여전한 친구로 남는다.
홀로 남은 상황에서 카밋과의 관계를 통해 부부관계에서의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울프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그리고 실업자로 살아가야한다는 연약한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새로운 삶의 기회마저 고마워할 줄 모르고 과거에 발목이 묶인 채 나약한, 때로는 지나치리만큼 강인한 자기 최면에 빠져 있었던 자신을 아무런 대가나 요구 없이 그의 곁에서 손발이 돼주고 있는 카밋을 보며 자신의 진짜 문제는 허리통증에서 오는 장애가 아닌 믿음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카밋이야말로 날 때부터 인간에게 지독한 학대를 받고 급기야 버림까지 받은 상황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한 눈으로 그들 곁에 다가와 용서의 눈길을 보내고 있음을 마음으로 읽었다고 할까?
이 멋진 개가 날 선택한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카밋은 경견장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그런데도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그 마음의 깊이를 결코 다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카밋은 사랑, 우정, 그리고 새벽에의 무한한 기대감과 같은 영원불멸의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애써왔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날 위해 애써왔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p281)
이후 울프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화해를 하고 관계를 회복한다. 그리고 비록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 가혹한 시련의 나날들이지만 남은 날들을 신세진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시간으로 보낸다. 무료법률상담은 물론 그레이 하운드 구조 단체의 모금 활동과 행사를 돕기도 한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날들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카밋은 학대받는 그레이하운드 경견용 개의 대명사가 되어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2010년에는 네브래스카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올해의 보조견’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책 출간 이후 노골적인 경견 학대에 대한 묘사로 경건업계 종사자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하니 책의 파급 효과가 어떠했는지 짐작해볼 만하다. 다행히도 이후로는 은퇴한 경주견들의 상당수가 보호소에 보내지거나 추후에라도 가족에 입양될 수 있도록 다른 개나 사람과 어울릴 수 있도록 신경써준다고 한다. 그레이하운드 종이 지닌 조용하고도 강인한 특성을 살려 경주견 대신 보조견이나 치료견으로 훈련되기도 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책의 원제목이 <comet’s tale : 카밋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나 국내 번역 제목이 <늑대를 구한 개>인 것을 감안해볼 때 이 책의 주인공은 저자라기보다는 저자와 함께 인생의 후반부를 함께 보낸 개 ‘카밋’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그만큼 ‘카밋’이 저자의 삶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한 것으로 이후 그의 삶의 태도를 바꿔 놓게 했으며, 더 나아가 경주용 개에 대한 끔찍한 동물학대에 대해 사회적 인식 변화까지 이끌어 냈으니 말이다. 결국 울프와 카밋의 불완전한 만남은 서로에게 치유와 안정으로, 완전한 성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 둘이 들려주는 이 아름다운 말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인생이란 건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빗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거죠.(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