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 듯 말의 파장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삶의 깊이와 진정성이 담긴 말 한마디는 때로 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아세피린보다 잘 듣는 진통제가 되기도,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도 한다. 때로 화려한 업적보다 그가 남긴 소박한 말 한 마디가 후대 사람들에게 더 인상적인 이미지로 기억되거나 회자되기도 할 만큼 말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이 책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 분야에서 내로라할 만한 유명인들의 사물을 꿰뚫는 날카로운 화법 속 유쾌한 재치나 유머 속 삶의 여유를 보여주는 말들을 풍성하게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인 ‘리파티(repartee)-재치즉답 또는 현답’ 모음집인 <말 콘서트>는 제목 그대로 각양각색의 재치있고 유머있는 말을 독자 앞에 볼거리 풍성한 콘서트 양식으로 보여주는 ‘재치현답’과 같은 책이다. 단순히 유명인이 남긴 ‘명언’이라고 하기엔 톡! 쏘는 뒷맛에 뭔가가 부족하고, ‘유머’라고 제한하기엔 가볍지만은 않은 진중함이 느껴져 그것 또한 부적합하게 느껴지는 말들의 향연이랄까? 저자가 특별히 ‘리파티’라는 말을 사용해 쾌활한 위트나 지적인 유머라는 뜻으로 달리 표현한 것도 이와 같은 경계선의 필요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때문에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리파티’는 그 말이 출생하기까지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문화적, 생활적 배경으로서의 상황을 폭넓게 들여다볼 때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1부 대문호∙예술가∙철학자∙성직자 편을 시작으로 2부 영웅편, 3부 대통령∙총리∙주석 등의 유명정치인이 남긴 경세지세의 말, 4부 한 시대를 빛낸 세기의 여배우∙여가수 편, 5부 인생∙처세∙지혜 등 현대인에게 유용한 처세담을 지나 6부 세련된 입담인 익살과 7부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역설과 모순어법에 이르기까지 출판사 소개 그대로 어디를 펼쳐 봐도 순서와 상관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발자크,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 톨스토이, 볼테르, 김수환 추기경, 춘성 스님 등 세계적 대문호와 철학자들이 남긴 1부가 삶의 깊이와 통찰이 느껴져서인지 가장 읽을 만했고 재미있었다. 수록된 내용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몇편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발자크는 “나폴레옹이 칼로 이루었던 모든 일을 나는 펜으로 이루리라.”는 말을 통해 ‘문학의 나폴레옹’이 되고자 했던 열망을 드러낸다. 여담이지만 그는 글을 쓰기 위해 하루 40여 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커다란 감정이 커다란 단어에서 나오는가?”라는 헤밍웨이의 이 말은 ‘헤밍웨이는 사전을 찾아봐야 독자가 알 수 있는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포크너의 말을 전해 듣고 한 말이라 한다. 헤밍웨이의 문장이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간결한 반면, 포크너는 어려운 단어로 긴 문장을 쓴 것으로 유명했다는 것이 말의 탄생을 실감나게 뒷받침해준다.
“내 천부적 재능 말고는 신고할 게 없소.” <행복한 왕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이 말은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세관원이 질문한 “신고할 게 있습니까?”라는 말에 대한 대답이라 한다. 스스로를 천재로 여겼을 만큼 문학적 자부심이 뛰어났던 그는 영어권에서는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재치있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버나드 쇼의 이 말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원 문장은 ‘나는 알았지. 무덤 주변에서 머무를 만큼 머물다 보면(=오래 살다보면) 이렇게 무덤에 들어갈 줄을.’이라고 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앞 문장이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 못지않게 재미있는 원효대사의 일화 중 한 토막. 어느 날 원효대사가 절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문상을 가서는 “야, 이놈아. 너 태어날 때부터 죽을 줄 알았다.”라고 했다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실로 도의 경지에서 집약해낸 명언이 아닌가?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에 거짓은 지구의 반을 갈 수 있다.”는 말로 진실과 상관이 없는 온갖 루머나 비방, 과장과 허위의 말들이 지닌 허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담배를 끊는 것은 내가 해본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나는 그것을 천 번 해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는 그의 말은 담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특유의 유머 감각을 통해 반어적으로 보여준 말이기도 하다.
“세익스피어는 우리 행성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오.” 카잔차키스는 인간의 말을 그처럼 힘차고 부드럽게, 그처럼 감미롭게, 신비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은 세익스피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극찬의 말로 존경을 표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죽을 때까지 옹호한다."는 볼테르의 말은 이후 언론의 자유를 언급하는 자리에서 종종 입에 오르내릴 만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름을 주장하는 멋진 표현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 말이기도 하다.
촌철살인이나 정문일침과도 같은 한 마디의 위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책을 읽다보니 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여기저기 밑줄을 긋다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아내고는 탄성을 질러댔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이 남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능한 적은 수효의 낱말로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틀림없이 대충 훑어볼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알기 쉬운 말로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오해할 것이다." 이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표현이 또 있을까? 말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해 볼 때 결국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어떻게 이해하느냐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앞으로의 언어생활에 상당한 힌트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뿌듯한 수확이기도 하다.
저 자가 영어칼럼니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만큼 언어만이 아닌 생활문화까지 짚어가며 말의 탄생과 유전을 풀어주고 있어서일까? 책이 단순한 말모음집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배경까지 돋보이게 하는 풀이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말 한마디로 압축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으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여기저기 흘리는 말들은 자기 삶의 가치관과 정서를 드러내는 조각들임을 볼 때, 이 책은 동서고금의 수많은 영웅들과 유명인들을 편하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 스타다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