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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kp님의 서재
  • 영혼의 오페라
  • 박상원
  • 16,200원 (10%900)
  • 2021-06-17
  • : 7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고전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공간인 고클래식에 가입한 지도 만 20년이 다 됐다.

 그때보다 4년 전인 1997년 초에 인켈 카세트리시버였었던 오디오 시스템을 인켈 컴포넌트 시스템으로 바꾸고 1998년 가을부터 고전 음악 CD를 하나둘 사 들이게 된 게 본격적으로 고전 음악 감상에 취미를 들이게 된 첫걸음이었는데 그동안 고전 음악과 함께 해 온 내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돌아보면서 내 삶과 고전 음악의 상관관계도 가끔 회상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치와 낭비 같기도 했었던 이 고전 음악 감상의 취미는 이론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문외한으로서의 접근이었지만 점차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면서 감성적으로 훨씬 더 친밀해지고 나름대로 듣는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음악이 여가를 선용하게 해 주고 삶의 위로와 활력을 주지만 일상생활과 유리된 메시지는 삶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생경함과 단절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무리 고전이라고는 하지만 시대적 단절감과 인종적 단절감을 인지하게 되고 현대 음악은 대체로 세계 대전의 대량 살상과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로 인해 피폐해진 실존을 음악에 반영하다 보니 난해하고 배타적이고 반대중적이어서 더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취미에는 다 장벽이 있다. 그런데 20년이 넘는 세월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온 취미란 그만큼 자신에게 집착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식적으로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고 수수하게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반려 같은 취미는 그 자체로서 이미 반려가 돼 버린 것이다.

 아흐레 전에 고클의 한 회원으로부터 오랜만에 쪽지를 받았다. 그동안 자신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댓글을 써 준 것에 대한 답례로 자신이 쓴 책을 보내 준다는 것이었다. 사양하다가 받은 책은 424페이지나 되는, 꽤 두꺼운 책이었다. 그 책의 서문에는 내 아이디도 적혀져 있었다. 공통된 관심사인 고전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애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글들에 공감을 느껴서 작은 관심들을 댓글로 남긴 것 뿐이었는데 그 분에게는 꽤 큰 성원이 됐나 보다.

 64개의 리뷰가 수록돼 있었는데 장르별로 분류해 보니 교향곡이 6편, 관현악곡이 10편, 협주곡이 4편, 실내악곡이 11편, 독주곡이 12편, 성악곡이 14편, 오페라가 7편이었다.

 필자는 이 책에서 결코 전문적인 심각한 접근은 하지 않는다. 그런 서술은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무척 유용하겠지만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요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취미인 고전 음악의 이론에 일가견이 있음을 책의 부분부분에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리뷰하는 작품들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사색한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그의 문체는 대체로 읽는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북돋우기 위해서 속적이고 단순한 표현을 즐겨 사용해서 대중들에게 어렵다고 인식되고 있는 고전 음악에 대해 친근감을 높여 주고 쉽게 접근하게 해 준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대한 이해와 음반에 대한 설명을 알기 쉽게 유려하고 자연스럽게 서술해 나아간다.

 필자가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고클래식 디스코그래피에는 수많은 고전 음악 연주 음반들이 등재돼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확인해 보니 자신이 2003년부터 지금까지 등재한 연주도 15396개나 된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등재 순위와 갯수지만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다(多)입력 Top30에서 순위가 오랫동안 5위였었는데 지금은 7위다. 아무 댓가를 받지 않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등재하는 것인데 오래 전부터 회원들이 경쟁적으로 이 디스코그래피를 꾸준히 채워 오고 있는 것도 경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사이트가 개설됐었던 초기에는 활발했었던 동호회가 많이 시들해지고 상업적인 사이트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열성 회원들 중의 한 명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화려하고 현학적인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이어지는 문맥이 막힘없이 글을 쑥쑥 읽게 해 줘서 이틀 만에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어렵지 않게 독파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홀대를 받아 온 세계적인 한국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서 그에 대한 리뷰만도 여섯 개나 되니 이 책에서 무려 10%에 가까운 공간을 할애한 것이다. 윤이상에 대한 연구와 공연, 녹음이 정작 그의 고향이 있는 남한에서는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북한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수십 년 전부터 공산주의 국가들과 수교하고 왕래해 온 나라로서 한편으로는 이상하면서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중상류층의 보수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리라.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31번 리뷰에서는 모차르트의 힘겨운 삶의 비애가 마음을 아프게 했고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리뷰에서는 스케르초에 대한 필자의 깊은 관심이 읽혀졌으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의 리뷰에서는 엄혹한 독재 정치 체제를 살아가는 작곡가의 공포와 울분이 마음속 깊이 각인됐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서는 곡의 환상적인 색채를 강조했고 그 반면에 들리브의 "코펠리아"에서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환상성을 깨뜨리는 묘미를 발견한다.

 본 윌리엄스의 "날아오르는 종달새"에서는 영국인들에게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이 곡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상세하게 서술해 주었다.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트리오에서는 스승의 죽음에 대한 제자로서의 비애와 추모를 담은 진중하고 애달픈 마음, 보로딘의 현악 사중주 제2번에서는 LP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좋은 내용이 많지만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망치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이만 생략한다.

 고전 음악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중상류층이나 인텔리들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취미에 입문하게 된다면 일상과 다른 보다 휘황찬란한 세계가 전개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 고전 음악 감상이라는 것도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고 오래 즐길 수도 있는 취미의 하나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괴리가 있는 취미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고전 음악 감상에 취미나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고 아집에 찬 취미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기도 하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고전 음악과 삶의 거리(距離)는 아주 가깝거나 없다고 생각한다. 고전 음악 감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과 고전 음악의 거리(距離)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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