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때 자연스레 보호받는 입장에서 살아가며 성장한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가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부모가 더 아프고, 돌봄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 자라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돌보는 일을 우선시해야 할 때, 삶은 그 어떤 동화보다도 혹독해진다.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는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조현병을 앓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나가노 하루의 이야기다. 그는 평범한 아이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황금의 몸과 만 년의 마음’을 지닌 존재로 치장한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를 신화로 둘러싼 채 살아남으려 했던 그의 이야기는, 성장과 생존의 경계가 무너진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부는 어린 시절부터 십대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비상사태’를 기록한다. 예컨대 병원을 가기 위해 탄 전철 안에서, 엄마는 갑자기 바닥에 대자로 누워 일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일상이었고, 매번 환청과 망상에 휩싸이는 엄마를 지켜내기 위해 저자는 스스로를 신과 가까운 존재라고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신화적 비유로 자신을 감싸고 있어도, 어린아이로서의 외로움과 부끄러움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무도 오지 않은 운동회에서 느낀 공허함,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갈망했던 마음,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 앞에서 겪은 좌절감. 그것들은 사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감정이지만, 그에게는 훨씬 더 깊고 날카로운 상처로 다가왔다.
결국 아무리 스스로를 신으로 포장해도, 아이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 어린 돌봄자가 겪은 정서적 후유증은 2부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아직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돌봄자가 된 그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결국 스스로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타인을 돌보는 일에서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로 서서히 방향을 틀며, ‘황금의 몸’에서 벗어나 다시 자기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 책은 ‘영 케어러’라는 사회적 문제와 맞닿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담담하면서도 시적인 저자의 문장에 독자는 깊이 빠져든다. 자식으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또 그것이 사회와 어떻게 맞부딪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은 읽는 내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는 어린 돌봄자의 삶을 넘어,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취약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타인을 돌보는 일을 넘어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로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삶과 연대의 의미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