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켄지 워크의 『레이빙』은 테크노 레이브를 단순한 음악적 사건이나 아지트의 풍경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이론이자 오토픽션으로 출발해, 우리의 몸과 세계가 일시적으로 분리되는 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탐구하는 철저한 시도다. 트랜스 섹슈얼 연구자인 저자는 트랜지션 이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몸을 살게 되었으나 아직 세계는 그 변화를 거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는 회상이나 추억을 재연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시 길을 잃을 준비를 하는 태도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한다.
『레이빙』의 흥미로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자칫할 수 있는 그려지는 모습과 달리, 저자는 레이브를 유토피아적 도피처로 신화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상황을 미래가 얼마 없는 시대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레이브는 잠시 열리는 일시적인 상황으로 전환이 기능한다. 잠깐의 해리, 몰두, 해방, 그것들은 구원이 아니라 연명으로 작용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삶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발견해 나간다.
레이브스페이스, 제노-유포리아, 인러스트먼트 등 여러 개념들도 음악의 전환처럼 짧고 강렬하게 등장한다. 이 개념들은 거대한 이론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저자의 경험 속에서 변주하며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념이 뿜어내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견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레이브와 흑인성을 연결하는 방식도 주목할만한 하다. 그에 따르면, 테크노 음악의 기원은 흑인성에 깊이 닿아 있으며, 레이브는 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도려낸 피난처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현재의 레이브는 여러 정체성과 이론이 충돌하며 퍼져나가는 공진적 공간이지만, 실제 클럽에서 들리는 사운드의 기원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레이빙』이 레이빙하는, 또는 레이빙하지 않는 독자에게 무엇을 남기는 것일까. 그것은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진행하는 리듬이다(그렇기에 하나의 레이브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들으면서 읽기를 권한다). 레이브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도 저자가 레이빙에서 추출하는 발견을 읽다보면 독자는 어딘가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을 비트를 상상하게 된다. 『레이빙』은 삶을 설명하는 대신, 삶을 흔드는 비트를 싣는다.
『레이빙』은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일기 같고, 음악 같다. 그리고 끝에는 다음 비트가 오기 전까지의 침묵 같다. 레이빙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모든 개념을 이해하지는 않았고, 그리고 꼭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비트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남을 것이다. 그것은 레이브가 끝난 후 셔츠에 남는 소금기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