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은
부와 명예보다 ‘삶의 진실’을 좇는 한 인간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은 안정된 직업과 결혼, 사회적 지위를 모두 거절한 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찾기 위해 세계를 떠돈다. 파리의 허름한 하숙방에서 철학과 종교서를 탐독하고, 인도에서 명상과 깨달음을 구하는 그의 길은, 당시 서구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조용한 반역이자, 영혼의 순례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탐미적 문장과 냉철한 시선이 함께 흐른다는 점이다. 몸은 세속적 인물들의 사랑과 배신, 질투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래리의 길 위에서는 일종의 영적 고독과 초월을 담아낸다. 그 대비는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면도날은 실존적 탐구와 동양적 깨달음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래리의 여정은 사르트르의 ‘본질 없는 존재’처럼, 스스로의 의미를 창조하려는 실존의 몸부림이자, 우파니샤드나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의 체험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 길은 위험하고, 외롭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겐 무모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면도날처럼 가늘고 날카로운, 진리로 향하는 길임을 소설은 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