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패배
2026. 6. 12(금)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과 비슷한 제목이라 이목을 끈다. 역사학자나 미래학자가 아닌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본 서구의 미래라는 점도 책을 주문하게 한다. 에마뉘엘 토드는 ‘가족 체계와 인구학적 변수가 이데올로기, 정치 체계, 종교 체계를 결정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저서들을 발표’한 인류학자다. 인구학적 변수는 국가 흥망의 상수로일 수 있고 경제력이나 군사력도 마찬가지지만 가족 체계를 변수로 내놓은 글은 내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하리라 기대했다.
토드가 제안하는 가족 체계는 부계 사회와 부모계 사회로 구분한다. 부계 사회는 사회공동체를 중시하나 부모계 사회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한다는 것으로 풀어간다. 이외에도 종교, 그중에서도 서방 세계의 주요 종교로 개신교를 상정하고 개신교의 변화를 3단계(활성 단계, 좀비 단계, 제로 단계)로 구분하며 서방 세계의 패배를 말하고 있다. 패배란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에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가 미래에 승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본다.
『서방의 패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을 축으로 논리를 풀어간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는 실존적 문제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기리라고 내다본 ‘미어샤이머’(미국인)의 주장을 소개한다.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서 출발해 서방의 위기로 이끌어 간다.
토드는 서방에서는 국민국가가 사라졌다고 가정한다. 국민국가라면 영토가 최소한의 경제적 독립을 누리는 정치 체계에 속해야 하는데 항상 적자였던 프랑스, 영국, 미국은 더는 완전한 국민국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제대로 작동하는 국민국가는 중산층이 중심축인 특수한 계층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이어온 것이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와스프 WASP-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문화가 단계적으로 무너지면서 중심과 계획이 없는 제국, 즉 네오콘(힘과 폭력을 믿고 근본적 의미의 문화가 없는)이 형성되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세계화를 시도한 미국에 중국 제품의 범람으로 미국 노동자 계층이 사라진 것이, 로마의 역사에서 이탈리아로 밀, 수공업품, 노예가 유입되면서 농부와 수공업자가 사라졌던 제국의 후기와 유사하다고 본다. 경제지리학에서 다루는 세계화에 따른 글로벌 가치사슬이란 것이 허망한 결과를 이끌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개신교의 붕괴가 미국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이와 같은 인류학자의 논리를 전개하며 먼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동유럽을 살펴보고 유럽과 미국의 쇠퇴 현상과 원인을 나열하며 왜 많은 나라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지 살핀다.
러시아는 푸틴 집권 기간 내에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률, 자살률, 살인 발생 건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러시아 국민이 1990년대의 악몽 이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음을 재발견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 반열에 올랐고, 세계 1위의 원전 수출국이며 엄청난 러시아 인터넷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제재를 받았으나 서방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자주권을 되찾았다. 토드는 러시아를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푸틴이 권력을 잡은 뒤 러시아인들은 국경 밖으로 나갈 권리가 생겼고 전쟁 중에도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한 체제가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거나 자신감을 가지려는 신호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이러한 러시아의 현 상황을 알 수 없기에 책이 주는 통계와 자료, 해석은 의미가 있다. 러시아에는 미국보다 공학도가 더 많다. 러시아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의 출현과 공산주의의 와해가 병존했다고 본다. 토드는 러시아의 특이한 공동체적 성향에 주목한다. 러시아에는 공동체적 가치-권위와 평등-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어서 하나로 뭉친 국가의 이상이 여전히 살아 있고 특수한 형태의 애국주의가 재출현했다고 본다. ‘푸틴 시스템’은 안정적인바 러시아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취약점도 있다. 근본적인 취약점은 저출산이다. 특히 동원할 수 있는 남성 인구가 감소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우선순위는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병력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외교와 군사 관행의 특징은(미국과 정반대로) 이미 한 약속은 지킨다는 신뢰성이다.”(P.59) 이 문장은 프랑스인 저자 토드의 평가다. 미국 중심의 서방 미디어로 접하는 소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대리모 출산의 천국이었다.”(P.65) 이는 낮은 출산율과 함께 사회 해체를 판정하는 지표다. 전쟁 중에도 대리모 출산이 줄지 않았다니. 가격 경쟁력이 세계 시장의 25%를 차지했다고 한다. 출산 수요는 서방 선진국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연하고 핵가족적이며 러시아의 집약된 공동체 시스템보다 자유민주주의에 더 개방된 부계 문화이다.
1931~1933년 우크라이나에 두 차례의 대기근이 있었고 이는 스탈린이 농업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력 행위로 기억되지만, 2차 대전 이후에는 첨단 항공 산업과 군수 산업을 포함한 산업 우선 개발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 중산층이 전반적으로 적었다는 점이다. 중산층을 차지했던 유대인이 비율로 따지면 러시아보다 많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90%의 유대인이 줄었다.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고, 서부 도시 르비우를 거점으로 한 국민주의 세력권, 수도 키이우를 포함하여 동방정교회, 약한 부계가 특징인 핵가족, 개인주의 성향이 특징인 중부, 친러시아 성향이지만 중산층이 이민을 떠나 현재는 러시아군이 점령하지 않았어도 구체적인 형태를 상실한 남부와 동부로 삼분되어 있다. 돈바스의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우크라이나 편에 섰고 나치 상징을 사용하지만, 러시아 문화를 따른다. 토드는 이를 러시아 중산층이 버린 서민 중 소수의 반응으로 본다. 우크라이나에는 “금지된 정당이 12~19개나 되니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P.103) 세금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지원금으로 예산을 충당하고 있으니, 우크라이나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다.
러시아가 요구한 것은 세 가지였다. 크림반도를 유지해야 한다. 돈바스의 주민들이 용납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은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지위를 갖는 것이다. 나토에 가입하려고 애쓰는 우크라이나를 가민 둘 수 없었다.
미국에 관한 이야기다. 과두제와 니힐리즘으로 미국의 본성을 규정한다.
“개신교의 제로 상태를 통해서 트럼프 현상과 바이든의 해외 정책, 내부로는 썩어 들어가고 바깥으로는 과시 벽을 보이는 미국, 미국 시스템이 자국 시민과 다른 국가의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p.223)이라는 표현으로 미국의 사유와 사상이 위함 진공 상태에 있다고 본다.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만 남아 있다. 미국의 사망률 증가 추이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 지출, 기대수명의 감소, 유아 사망률에서 니힐리즘을 본다. 루스벨트 시절에 부자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고 이들을 견제할 노조를 제도화하여 노동자 계층이 중산층으로 이동하 선한 사례도 있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20세기 후반 미국 와스프의 상류 계층이 보인 행태를 이론으로 만들었고, 여기서 ‘정의’라는 것이 최종적으로는 최빈곤층의 행복은 증진하더라도 불평등을 없애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1980~2020년은 미국에 불공정이 판을 치는 상황이었으나 『정의론』이 정치인들과 싱크탱크 지식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에 시작된 롤스의 전 세계적-아니 서방에서의-성공은 계획된 것이었다. CIA가 재정 지원을 해주었다. 토드는 이를 사회학적으로 사악하다고 평가한다.
미국 개신교가 제로 상태에 있다는 설명도 여러 가지로 나열한다. 복음주의가 전통적인 개신교가 별다른 관계가 없는 이단이며, 유럽보다 미국의 종교 행위빈도가 높다는 통계는 부풀려졌다기에 개신교가 사라진 사실이 감추어졌다고 한다. 문맹이 퇴치된 인구에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신앙심의 후퇴를 보여 주는 지표다. 동성 결혼의 수용은 불가역적인 문화적 변화의 증거, 종교의 제로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교육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계층화되어 간다.
P.236~P.238에 걸쳐 재로 개신교와 흑인 해방은 독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해하려고 여러 번 읽었으나 저자 토드는 백인과 흑인을 구분(차별)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개신교의 붕괴는 흑인을 불평등의 원칙에서 해방시킨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당황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즉 흑인에 대한 불평등은 백인의 평등을 가능하게 했으며 흑인 해방은 미국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뜻밖의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흑인이 더는 불평등의 원칙을 구현하지 않음으로 백인의 평등도 전멸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민주주의 감점은 그 어느 곳보다 미국에서 가장 위협받고 있다.”(P.238)
세계화에 따른 노동자 계층의 파산은 중산층의 감소로 이어졌다. 최근 미국 마가(MAGA)들이 역사를 되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세계화는 미국 제조업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렸다. 1928년 미국 제조업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44.8%를 담당하다가 2019년에는 16.8%로 추락했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이다. 중국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싼 것과 비싼 것, 노동과 기술이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다. 중국은 2020년 28.7%를 차지했다.
미국 수감률 최고, 빈번한 총기 난사 사건, 비만의 나라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이끄는 미국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무기를 생산할 능력이 없다. 서방이 아닌 나머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의존성과 근본적인 나약함을 볼 수 있다. 서비스(의료를 포함)를 빼면 미국의 실질적인 국내 총생산은 2022년 기준으로 3만 9520달러(1인당 GDP는 7만 6천 달러) 로 독일, 프랑스보다 낮다. 미국의 무역수지는 불균형 상태다. 생산보다 소비를 많이 한다. 미국은 수입으로 살고 있고 그 수입은 수출이 아니라 달러를 찍어내어 감당하고 있다.
능력주의 이상은 미국 민주주의에 역효과를 냈다. 과학이나 공학 연구보다 수입이 더 높을 수 있는 법학, 금융학, MBA 등의 분야로 두뇌 유출이 일어났다. 이를 토드는 교육의 발전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타락이라 표현한다. 수입한 노동자에 대한 의존성도 높다. 미국에서 태어난 STEM 인력 중 67.3%가 학사로 해외인력 비중이 86.5%에 달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39%는 외국인이다. 현재 수입 인력은 와스프뿐만 아니라 미국 백인 전체의 교육 붕괴를 상쇄한다. 네덜란드병은 천연자원의 저주로 불린다. 미국 경제에 족쇄를 채우는 ‘천연자원’은 바로 달러다.
미국의 대학, 정치, 영화에서 유대인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비유대인과의 결혼율도 18%에서 61%로 변화되고 있다. 그래도 현재 지도층과 전쟁에 몰두하는 무리 중 유대인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P.219~273까지는 초강대국 미국의 민낯을 까발려 미래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은 초강대국이다.
미국과 유럽 모두가 현실과는 달리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며 전 세계를 대표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들은 주관적인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있다. 경제적 세계화 덕분에 서방은 세계의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일종의 글로벌 부르주아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기업의 외주 때문에 생산자로서의 가치가 제거되자 사회적 유용성을 잃고 알코올 중독, 오피오이드 중동, 절망, 자살에 빠졌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백인 국가인데 세계를 착취하는 게임을 일삼지 않으며 오히려 시스템 외부에 머물며 주권 국가로 남아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싸움이 아니라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이 벌이는 싸움이다. 러시아 봉쇄는 처음부터 나토의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는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인류학적 다양성에 관해 살펴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의 자유주의 정치 체제는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핵가족 배경에서 탄생했다. “중국의 농촌 가족 구조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와 평등주의가 특징이다.”(P.293) 토드의 이론에 따르면, 부계 원칙은 공동체 가족 시스템과 공존할 때가 많고 완전한 개인주의 가족 시스템과 공존할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고 한다.
“대만과 일본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미국은 그럴만한 제조업을 더는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에서 계속 자라고 있는 니힐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약속 존중의 원칙을 낡고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배신이 규범이 되고 있다.”(P. 301)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패배는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을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2001년 12월 11일에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켰다.
미국이 중동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은 2009년부터 에너지 자립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두고 양자택일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체제 붕괴를 가져온 것은 유럽연합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되찾고 러시아계 주민에게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해서 다시 굴종시키는(또는 추방하는) 불가능한, 따라서 니힐리즘적인 꿈을 추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실질적인 회원국인 것처럼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나토가 실질적인 회원국을 위한 공격 부대인 것처럼 행동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불신은 백 퍼센트 정당하다.”(p.330)
미국의 무분별하고 비타협적인 이스라엘 지지는 자폭 징후이다. 미국의 전략적 선택을 예상하고 싶다면 합리성이라는 명제를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 한다. 국방부와 백악관 지휘부는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과 우크라이나를 결국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대규모 탈산업화와 재산업화를 겪는 상황에서 맛보는 국제적, 전략적 패배이다. 미 제국주의와 달러의 후퇴는 미국인의 생활 수준을 급격히 떨어뜨릴 것이다.
에마뉘엘 토드의 『서방의 패배』가 전개하는 논리 중 가족 체계 부분은 논리 구조를 구성하는 뼈대로는 취약하다는 느낌이다. 미국 개신교의 현 상황을 제로 단계로 보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만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점만 확인한다. 주요 내용은 미국의 현 상황을 기술하는 것으로 여러 다른 책에서 언급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피터 디킨이 지은 『세계경제공간의 변동 GLOBAL SHIFT: MAPPING THE CHANGING CONTOURS OF THE WORLD ECONOMY』을 공부(이미 낡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중국이 증명하고 있다)한 경험에서 미국 제조업의 붕괴를 이해한다. 나아가 중국의 시진핑이 정한 방향, 노동력이 필요한 제품도 고급 기술이 필요한 제품만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후발국의 추격을 피하고 선진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란 판단은 올바른 판단으로 본다. 읽히기를 대기하고 있는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은 토드의 시각을 점검해 보고 미국의 약점을 극복하고 불확실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덧붙이는 잡다 :
서방이란 무엇인가 묻고 답한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와 유럽의 경제 도약의 상관관계를 수립했다. 개신교는 원칙적으로 신자들의 문맹을 퇴치한다. 모든 신자가 성서를 직접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게 돈 주민들은 기술과 경제 겨에 발전도 이룰 수 있다. 개신교는 우연히 더 효율적인 노동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개신교는 예정설을 이어받아 선택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가 있고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1907~1981년 미국에서 성행한 우생론과 강제 불임 수술은 모든 인간에게 기본권을 똑같이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 배경의 논리적 결과다. 따라서 개신교는 이중으로 서방 역사의 중심에 있다. 좋게는 교육과 경제 발전에 기여했고, 나쁘게는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사고를 초래했다. 토드는 종교를 활성 상태, 좀비 상태, 제로 상태로 구분한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인류학적으로 볼 때 사회세력으로서의 기독교는 완전한 종식된 ‘제로 상태’로 본다.
달러화가 미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화가 된 것은 1960년대로 대영제국의 해체가 큰 원인이었다. 최초의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을 구축했다고 보는 것은 칼 폴라니의 관점이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파괴한다. 신자유주의는 ‘정신’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서 해방된, 베버식과는 다른 자본주의를 세우기를 원했다. 신자유주의 혁명은 지적인 단순성을 넘어 도덕의 결여를 보여 준다. 1870~1930년의 개신교를 좀비 개신교 사회라 부른다. 종교 활동이 위축되었지만, 종교의 사회적 가치는 여러 교화가 만든 통과 의례들과 함께 살아남은 세계다. 1960년대에 좀비 상태에서 제로 상태로 이행하였다고 본다. 화장 비율의 급격한 증가와 동성애 결혼이 대세를 이룬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