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법률가들
2026. 5. 31(일)
부제가 ‘법은 어떻게 독재를 옹호하는가?’인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법이 어떻게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여 국가가 인간성과 법치라는 근본적 기준을 깨뜨리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는지를 알려준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 권력인 공권력에 의해 생명과 재산을 잃고 빼앗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이 차츰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독재 권력이 경찰과 군, 검찰을 이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해 모른 체 하거나 관점이 다르다는 말장난으로 책임과 반성의 기회조차 ‘나는 몰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정농단과 불법 계엄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력화하는 상황에서 법의 제정과 적용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왜곡된 규범 질서의 주요 부분이 어떻게 변화하고 정권에 충성하던 법 이론가들이 이를 정당화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나치의 법 이론은 형식주의와 실증주의를 버리고 ‘공동체의 통합’, ‘명예’, ‘인종적 동질성’, ‘인종적 평등’ 같은 실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법의 실질적 개념을 선호했다. (p.20) ‘공익은 사익보다 앞선다.’라는 원칙에 따라 법은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신 공동체를 육성해야 했다. 민족사회주의 법에서 지침과 제도들의 이론적 토대에는 국가의 통합을 이유로 획일적인 세계관과 공통의 윤리적 신념을 바탕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삶을 꾸릴 것을 시민들에게 요구했다. 이는 계몽철학의 기본원리와 충돌했다. 칸트는 ‘어느 누구도 내게 본인의 방식으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라는 자유 개념은 나치 이데올로기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책은 독일 최초의 민주정인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의 결점들(대통령의 긴급명령에 따른 통치 가능성, 명확한 사법 심사 권한을 갖춘 헌법재판소의 부재 등)을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긴급명령은 극히 제한적이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경험이 있으니,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에 비해 한국 헌법은 안정적임을 알 수 있다.
나치의 법률가들은 1차 대전에 참여했던 투사들의 경험으로 생겨난 사회적, 공동체적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바이마르공화국 말기에 자행된 나치 돌격대의 잔혹한 테러와 폭력을 은폐하려 하였다. 1933년 민족사회주의 정권을 장악했던 법 이론가들은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정을 뿌리 깊게 경멸하였고 대학의 법 이론가들의 공격적인 수사는 전체주의 국가를 용인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바이마르 헌법 48조는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통해 정치적 과정에 개입하도록 허용해 군사적 지원 요청할 권리,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할 권한이 주어졌다. 이는 극우파와 급진좌파의 영향력에 맞서 공화국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권위주의가 부상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외에도 국가기관들이 헌법에 따라 입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평가할 수 있는 법적 기관이 없었다. 대통령은 헌법의 범위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제국 대통령의 명령은 위헌적이었고 법원 판결의 결함은 상당 부분 제도적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히틀러의 집권을 지지했던 보수주의자들은 히틀러가 볼셰비즘을 막아줄 유용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고, 히틀러와 나치당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p.66)
법사상가들이 히틀러의 권력 축적을 정당화한 방식을 살펴보면, 1934년 힌덴부르크 사망 이후 히틀러가 제국 총리로서 제국의 대통령직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전임 군 장성 힌덴부르크의 후광을 입은 총통은 국가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이를 활용했다. 법 이론가들은 전체국가(total state)라 일컫는 특정 유형의 단일국가로 해석하여 독일이 독재국가로 변모한 사실을 은폐하려 하였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제국 총리 자리에 임명된 것은 독일에 급격한 정치적, 법적 변화를 몰고 온다. <제국 의회 화재 법령>으로 바이마르헌법이 보장하던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정지됐다. <수권법>은 과거 주권을 가졌던 연방 주들은 제국의 행정단위로 전락하여 중앙집권국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천명한 목표는 일당독재였고 1년 만에 이를 이루었다. <신규 정당 설립금지법>, <당과 국가의 통합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 제정되었고, 1934년 1월에 <제국의 재건을 위한 법>은 주의회를 해산시키고 주권을 제국에 넘김으로써 독일의 연방 구조를 뒤엎어 버렸다. 1934년 8월 실시된 대통령 및 총리 직무 통합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90%의 득표로 히틀러는 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투표는 정치적 전횡을 형식적인 법적 정당성 안에 은폐하려던 전략이었다. 이후 총통은 대통령, 총리, 나치당의 당수 역할을 한다. 전반적으로 법률가들은 인조 이데올로기와 총통에 대한 신화적 지위 등을 포함한 민족사회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국가기관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후 나치 형법 이론가들이 범죄행위 자체보다도 범죄자의 범죄 의도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형법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인종적, 사회적 편견에 취약해지고 말았다.
나체 체제는 형법을, 국민을 통제하고 심지어는 공포로 몰아넣었고, 게슈타포에게 여러 권한을 빼앗기면서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어 버렸다. 나치당은 ‘사실 중심 형법’에서 ‘신념 중심 헌법’으로 바뀌어 갔다. 나치 국가의 형법에서 형법의 주요 목적은 범죄 억지와 보복, 형법의 도덕화와 명예 처벌 승인, 자유주의 원칙인 ‘법 없으면 범죄도 없고, 처벌도 없다’를 ‘처벌 없는 범죄는 없다’로 대체, 유추의 허용, 의도 중심의 형법 개발이라는 특징
가졌다.
반유대주의 인종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고 관료주의적 각료들도 과격해지던 정권의 계획을 충분히 인지했을 뿐 아니라 대량 학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치 친위대와도 교류했다. 나치 친위대인 게슈타포는 국가 안의 국가였고 공포, 박해, 살인의 중심에 있었다. 나치 친위대에 자체적인 군 사법관할권은 법률적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치 친위대 사법권이 직면한 문제는 폴란드 점령지역에서 장교들이 자행한 중대 범죄뿐 아니라 대량 학살 명령이 친위대 법원 최고 심급인 힘러와 히틀러로부터 직접 전달되었음이 사실이다.
1933년 4월 <직업공무원제의 재건을 위한 법>에서 모든 유대인 공무원을 해임한다고 규정하였다. 1935년 뉘른베르크법은 유대인과 아리아계 독일인과의 결혼 및 혼외정사를 금지하였다. <제국시민법>은 유대계 독일인의 투표권을 박탈했고, 유대인은 독일제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1941년쯤에는 이른바 ‘최종해결’ 지시는 히틀러로부터 서면이 아닌 구두로 하달되었다. 히틀러가 내린 이 명령은 나치 친위대장이자 독일 경찰 수장인 함러에게, 나치 친위대와 경찰 고위 간부들, 특수기동대에 전달됐다.
3차 <게슈타포법>은 게슈타포의 조치들에 대한 사법 심사를 배제하여 강제수용소 내 친위대의 폭정과 수감자들의 법적 무방비 상태를 고착했다.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모든 동향을 감시, 박해, 진압하는 것이 비밀국가경찰의 기능이라고 정의했다. 함으로는 히틀러의 의지를 합법성의 근원으로 강조했다. 1938년 <보호구금에 관한 법령>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기까지의 모든 절차를 은폐했다. 나치 친위대 사법권은 나치 법 이론의 특징인 법과 도덕의 통합을 수용하는 도덕화 이데올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저자는 법과 도덕을 분리하고 법은 자율적인 행위성 및 타인과의 비폭력적 조정을 보장해야 함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을 읽어가며 입법이 세상이 펼쳐지는 방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며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법 사상가들, 법 이론가들, 대학 교수들의 사고가 법 제정의 바탕에 있음을 확인하니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절차이자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이라는 법의 위계를 고려할 때 국회의 권한이 막중한데도. 이보다 큰 문제는 법을 적용하는 사법권에 있다고 본다. 법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가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보통 4년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문제다. 송사에 연루되면 그동안의 불확실성이 생업 종사에 막대하게 지장을 주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일반 독자에게 큰 흥미를 끌지는 못할지라도 입법, 행정, 사법 등 법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법률적 행위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 읽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