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대한 권리
2026. 4. 11(토)
아파트 가격의 상승으로 재산 증식을 꿈꾸며, 토지 보상으로 수십억의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물질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가 성찰하기에 알맞은 책이다. 앙리 르페브르의 책은 쉽게 읽히질 않는다. 『공간의 생산』이 그러했고 『도시에 대한 권리』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 철학자라는 지위와 불어를 매끄럽게 번역하기 어려운 데다 추상적인 개념이 많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공간의 생산』이 번역된 후 지리학을 한다는 사람과 건축학, 도시계획자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공간의 생산』보다 먼저 출간한 책으로 인간의 권리에 사회권(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건강, 주거, 여가, 생활의 권리)이 라는 개념이 들어설 1960년대 후반에 세상에 나왔다.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현업에서 퇴직한 2026년에 읽은 독자의 처지에서는 인문지리학 개론, 도시지리학, 도시 사회 지리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낀다.
도시의 권리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계층, 성별, 직업, 재산 수준에 상관없이 인간답게 거주하고, 도시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향유하며, 나아가 도시행정에 참여할 권리’를 말한다. 서유럽, 미국, 중남미 국가에서 급격한 도시화로 사회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도시권’에 대한 개념이 확산하고 활발하게 논의 되어 왔다. 그 배경에 1968년에 출간된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또한 생업으로 택시 운전을 하면서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서 프랑스 공산당에서 활동하다가 주요 정책을 비판했다가 퇴출당하는 등 비주류의 시각은 1968년 프랑스 68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앙리 르페브르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산업화 이후 도시를 비판하고, 상품 혹은 기능으로 전락한 도시에 ‘사회적 상호 작용의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복원할 것과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도시거주민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도시화에서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현실에도 도시를 창의성과 진보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본다.
앙리 르페브르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헤겔, 니체, 마르크스, 엥겔스에 관한 글을 씀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북미에서는 앙리 르페브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연구가 1970년대에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크게 환영(『공간의 생산』 영어판이 3만 부가 팔렸으니) 받는다.
15개 장으로 구성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1장 산업화와 도시화를 읽을 때는 산업화와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폭넓게 그리고 가장 큰 부피로 기술한다. 고대도시, 중세도시, 산업도시, 메갈로폴리스까지 ‘도시의 발달’을 언급한다. 도시의 의사결정과정도 다루며 도시의 교외화, 토지와 건물에 대한 투기, 도시의 순환 구조, 슬럼, 도시 조직, 사회적 문화적 삶, 도심, 소비 장소와 장소의 소비, 도시 내부 구조의 분화, 신도시, 도시행정, 부동산개발업자의 도시계획도 다룬다. 현대 도시지리학이 다루는 영역 대부분에 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도시지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입문서, 혹은 도시철학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도시에서의 가치는 사용 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해 교환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비중을 둔다. 그리스의 아고라라는 오늘날 도시 철학에서 일반적인 도시 사회의 상징이 됐지만 앙리 르페브르는 이를 전형적인 이념 과장으로 평가한다. 그리스 도시가 누리던 자유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도시 자체에만 자유가 부여됐다고 본다. 도시를 정보와 의사결정의 중심이자, 교통과 의사소통의 네트워크로 정의한다고 선언한 것은 절대적 이념의 선언으로 본다. 사회적 측면에서 시간이나 미래 개념은 무시한 채 오직 공간 개념만 중시한다. 도시의 역사와 의식, 사회 문제를 공간의 문제로만 다루는 것은 너무 단순화한 이분법적 사고로 보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오늘날 근대 도시는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거나 의사결정의 중심을 결속함으로써 사회 전반(노동 계층뿐만 아니라 다른 비지배 사회계층) 의 착취를 조직하고 강화한다고 본다. 번역자가 도시[ville]과 도회지[urban]로 구분하는데 도회지는 완성된 책과 같이 체계를 강요하기보다 많건 적건 도시거주민의 작품이어야 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시계획과 관련한 생각과 활동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뿐만 아니라 이런 도시의 문제를 인식하고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잡다한 지식을 덧붙인다. ‘신은 죽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라는 니체의 성찰은 거의 한 세기 전, 유럽과 그 문화, 그리고 문명에 대한 나쁜 조짐이었던 보불전쟁(1870~1871) 중에 시작 되었다.(p.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