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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hill님의 서재
  • 구운몽
  • 김만중
  • 7,200원 (10%400)
  • 2003-01-25
  • : 12,731

구운몽

2026. 1. 24(토)

돌아 돌아 구운몽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반니 보카치오가 지은 『데카메론』에서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 이탈리아 사람들의 유머와 재치를 만났다. 여러 언어를 거쳐 번역된 『아라비안나이트』에 이어 조설근과 고악이 지은 『홍루몽』에서 중국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읽고 김만중의 『구운몽』을 읽었다. 『홍루몽』과 『구운몽』을 나이가 들어 읽은 것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리거나 젊을 때 읽었더라면 허황된 꿈 이야기로 쉽게 잊혀질 수 있었을 듯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고 허무라는 단어의 의미를 옅게나마 느끼는 시기에 읽은 것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홍루몽』과 『구운몽』 비교해 읽는 것도 재미있다. 『홍루몽』은 등장인물의 말과 속담 등으로 인생사를 평한다. 가모는 “무릇 사람이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부귀를 누릴 줄도 알고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연륜이 빚은 언사다. 모란이 고운 것도 푸른 잎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불교사상을 담은 표현과 사찰에서 행하는 장례식, 스님을 장원 내에 거주하게 하는 방식 등으로 불교를 수용하고, 도사의 등장과 보옥의 선문답, 소설의 끝부분에 나타난 문단으로 노장사상을 담고 있다.

『구운몽』에는 『홍루몽』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성진과 여덟 선녀, 여덟 선녀는 꿈속에서 인연을 맺은 두 처와 여섯 명의 첩이다. 성실한 불제자였던 성진이 잠시 마음을 잘못 먹어 인간 세상에 환생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결국은 그것이 허무한 것임을 깨닫는 꿈을 꾸는 과정이다. 육관대사라는 스님과 여덟 선녀를 통해 불교와 선교에 바탕을 둔 이야기임을 안다. 『홍루몽』이 시, 말과 속담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듯이 『구운몽』도 중국의 역사와 고사를 끌어다 이야기를 풀어간다. 수많은 전고(典故)를 살펴 사용한다. 조선에서 짓고 읽힌 소설이나 배경은 중국이다. 시골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낙양으로 가는 과정에서 여인을 쫓고 취하는 로드 무비식의 이야기와 토번 정벌, 관직을 얻고 제후로 봉해지는 과정에서 중국이란 지리적 배경을 토대로 한다. “예전 여자 중 시 잘하는 자는 반첩녀, 탁문군, 채문희, 사도온, 소악란뿐이라”(p.177)서술돼 있어 다섯을 검색하니 중국역사 인물이고 계급이(반첩녀)다.

 

소설에서 약수(弱水)를 인간 세상과 선계를 나누는 강으로 칭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레테의 강, 스틱스 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성진이 환생한 ‘양생(양소유)’ 이 둔 두 명의 처는 정경패와 난양공주 이소화로 자매의 연을 맺고, 여섯 첩과도 질투하지 않고 한 남자를 섬긴다. 첩에는 기생 출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여인, 공주 등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하나같이 양소유를 모신다. 이 점에서 요즘 여성 독자라면 비위가 상할 일이다.

양소유의 일생을 “승상이 일개 서생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 武로써 국가의 위기를 평정하고 文으로써 테평성대를 이루니 부귀영화가 곽분양과 견줄 만하였지만 분양은 예순에 장상을 하였고 소유는 스물에 승상을 하였으니 전후로 재상을 누린 것(여기서 왜 1심에서 내란 주요 종사자로 23년 형을 선고 받은 한덕수가 떠오르는지.....)이 분양보다 많고 군신이 함께 태평성대를 누리니 복록의 완전함이 진실로 천고에 없는 바더라”라고 정리하지만, 실제는 꿈이었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다시 장부가 되니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변하지 못했다.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닌가? 창밖 기온은 영하라지만 유리라는 장벽을 통과해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한 토요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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