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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줬으면 그만이지
  • 김주완
  • 18,000원 (10%1,000)
  • 2023-01-01
  • : 24,364

줬으면 그만이지

2025.9.25.(목)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삶은 철학 하는 삶이다. 사람의 행위에 드러난다. 각박하고 열악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많은 사람에겐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성찰조차 사치일 수 있다. 책을 읽는 까닭 중 하나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종교영역은 물론 공자를 위시한 제자백가와 서양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말과 행동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아포리즘으로 남아 있다. ‘길 위의 철학자’라 불리는 에릭 호퍼의 삶에서 철학은 생활과 유리될 수 없음을 생각한다. 살아가며 체득하고, 길게 보고 크게 보면 역경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보며 맹자의 말 (맹자(孟子)「고자장구(告子章句)」下 15장 – 글 끝에 원문 표기) 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 알 수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아파테이아’도 역경과 불확실성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

 

『줬으면 그만이지』를 읽어가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의 문제가 나의 삶과 멀리 있지 않음을 안다. 이미 많은 현재를 과거로 보냈으니 남은 미래가 짧을 것이니 안타깝다. 내 삶에서 남은 시간이라도 곱씹어 행한 것이 몇 가지라도 있었다고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옮겨둔다.

 

“나쁜 사람들을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도 중요한 언론의 기능이지만, 좋은 분들을 널리 알리는 것 또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데 유용한 방법”(p. 11)이라는 김주완의 기자 정신.

“사람은 마땅히 올바른 것에 마음을 두어야지 재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p. 36)라는 김장하 할아버지의 가르침.

“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p. 117)라는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하다는 김종명 씨의 말에 대한 대답

“자기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p. 130)이라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던 문형배에게 들려준 김장하의 말.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부끄러운 게 많다.”, “앞으로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다(p. 132, 137)”라는 지인들이 열어준 마지막 생일 잔치에서 했던 어른의 인사말.

“무지, 무경험, 무소신 등 3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p. 134)라는 문형배가 책을 많이 읽는 이유(2023년 기준 블로그에 올린 독후감이 1,330여 편이다.)

“장학생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명단을 공개하거나 모임을 못 하게 했다”(p. 149)라는 우종원 교수의 전언.

아들의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원받고 찾아가 가난한 시민운동가에게 해준 “나에게 갚을 필요는 없고, 다음에 당신처럼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때 그 사람한테 갚으면 됩니다”(p. 155)라는 말.

“사람은 담는 그릇이 있거든, 좀 덜어내야 또 채울 수 있지”(p.322)는 유혹을 물리치고 어떻게 사셨는가라는 박광희 목사의 질문에 답한 김장하의 말.

‘보시’에 관한 채 정승의 이야기, 인도 썬다씽이라는 성자가 경험했다는 이야기, 눈보라치는 겨울날 고개에서 만난 거지에게 외투를 벗어준 스님의 이야기(p.324~328)

무재칠시(無財七施) - 화안시(和顔施), 자안시(慈眼施), 언사시(言辭施), 심려시(心慮施), 사신시(捨身施), 상좌시(床坐施), 방사시(房舍施) (p. 329)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회에서 했던 김장하 선생의 나눔의 철학.

“예. 그걸 다 증명하려고,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화를 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죠”(p.337)라는 헛소문에 대하는 김장하의 자세.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p. 341)는 김장하 명예 문학박사 학위수여식을 마련한 자리에서 탄생한 김장하 어록 하나.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른 김장하의 철학은 한 마디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로 귀결한다.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 제목과 다르지 않다.

칼로 입은 상처는 치유되지만, 말에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른 김장하의 말은 공동체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약으로 효과는 마약보다 강하다.

 

P.S. 1 저자 김주완은 기자다. 편전이나 자서전을 기대했을 독자에게 취재기일 뿐이라며 겸손해한다. 취재 일기에 빠져드니 김주완 기자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어른 김장하를 둘러싸고 김 기자와 많은 이웃,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김 기자의 다짐(촌지 거부, 뚜벅이의 삶 등)과 실천하는 삶조차 나에겐 따르기 버거운 삶이다. 어떻게 어른 김장하의 삶을 따를 수 있겠는가. 흠모하고 존경할 뿐이다. 어른 김장하의 ‘어른’은 딱 맞는 수식어요, 나는 아직 어린이에 불과하다.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밤이다.

 

P.S. 2 특히 책걸상이나 교단, 교탁, 캐비닛 등 교구를 구매할 때 납품업체가 전체 금액의 20%를 커미션으로 지급하는 건 거의 굳어진 관행이었다(p. 167) - 몇 년 전 공공 사업하는 친구의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에 강의를 갔다가 부탁받은 300여 만 원어치 도서 구매 건을 출판사와 연결하면서 ‘내고’란 것을 경험하지 못해 친구의 오해를 샀고, 연락이 끊겼다.

 

맹자(孟子)「고자장구(告子章句)」下 15장

 

天將降大任於斯人也 (천장강대임어사인야) : 하늘이 이 사람에게 장차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必先苦其心志 (필선고기심지) :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지치게 하고

勞其筋骨 (노기근골) : 그 근골을 수고롭게하며

餓其體膚(아기체부) :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窮乏其身(궁핍기신) : 그 생활을 곤궁케 하여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 :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나니

是故動心忍性(시고동심인성) :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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