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팔리는 건, 그 팔할이 알랭 드 보통의 이름값 덕분인듯.
뭔가 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느낌. 이야기를 한참 재밌게 하다 중간에 끊긴 느낌.
주제 자체는 섹시하여 흥미를 돋게 하긴 한다.
다만 정론이든 황색매체든, 혹은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이 뉴스 그 자체가 가지는 우리사회에서의 기능을 문제삼으려 했다면, 그 뉴스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 지,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그 뉴스가 중세의 종교와 같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는지, 이런 얘기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뉴스의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보여주는 것 말고.
일종의 뉴스의 계보학 같은 것.
적어도 책 제목과 같이 <뉴스의 시대>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라면.
뉴스의 시대가 아니었던 시대와 지금, 뉴스의 시대인 지금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면,
바로 그 뉴스에 대한 질문을 다르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뉴스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뉴스인가?> 혹은 <누구를 위한 뉴스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그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가령. 이런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증권가 찌라시나 조선일보나 kbs나 한겨레나 오마이뉴스나 일베나 디시, 혹은 트위터 따위를 통해 유통되고 생산되는 뉴스의 사회적 기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실 뉴스 바깥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는 바로 그 뉴스가 유통되는 장의 한복판이 아니라, 바로 이 <뉴스의 시대>를 상대화해서 볼 수 있고,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다시말해 관점의 차이에 기초해서 어떤 뉴스가 어쩌고 저쩌고 하자는 게 아니라 뉴스라는 <공공의 이야기거리> 그 자체가 21세기의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했으 듯.
살짝 지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