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바람소리님의 서재
  • 조봉암평전
  • 이원규
  • 25,200원 (10%1,400)
  • 2013-03-01
  • : 442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나. 선배들로부터 4.3 항쟁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4월이라면 4.19 정도밖엔 떠올리지 못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현대사 공부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나라 현대사의 많은 부분을, 1000피스짜리 퍼즐을 끼워 맞추듯 간간히 조합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라고 하면 그저 고조선과 삼국시대, 고려, 조선만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 나라의 역사 교육. 나에게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근현대사, 특히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직후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여기저기서 조각조각 떼어와 누더기를 깁듯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지은이의 이전 책인 김산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과 책의 느낌은 비슷하다. 평전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일생 전반을 마치 소설처럼 강약을 가지고 긴장감 있게 풀어내면서도, 여러 연구자료들을 인용하면서 다양한 측면에서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인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은이는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 과정과 국가 수립 과정에서 누구보다 힘을 다해 일했으면서도 후세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이 큰 듯 했다. 그래서 연속해서 평전을 내놓았는데,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수도 없이 답사했고, 참고자료 열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두 읽고 참조했다. 그리고 이 세번째 평전의 경우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봉암을 다시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장감 있는 구성과, 일제치하에서 독립, 한국전쟁과 2,3대 대선까지의 다이나믹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조봉암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어우러져서 한번 잡은 책을 놓기가 어렵다. 절대 얇지 않은 분량임에도 옛날 이야기 읽듯 하다가, 신문의 정치면을 읽듯 하다가, 다시 르포 기사를 읽듯 하면서 만나는 조봉암은 정말 이승만이 두려워할 만한, 또한 우리 역사에서 절대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인물임을 확인했다.


모스크바에서 조선공산당의 대표로 인정받을 정도로 탁월한 식견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누구나 감화시킬 수 있는 언변을 지닌 사람이었고, 진보주의자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에도 농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발전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최초의 농림부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추진했던 선구자적 인물, 사민주의야말로 조국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임을 확신하고 진보주의자로서 두려움 없이 앞으로 전진했던 시대의 등불. 일본에 의해 억압 받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선택했고, 국가를 살리기 위해 가족마저도 뒷전이었던 사람.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갇혀 외롭게 죽어야만 했던 사람.


지금도 사민주의 정도의 이야기만 해도 종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굴레를 씌워대는 상황이니, 이승만이 모든 권력을 휘두르던 한국 전쟁 직후에는 오죽했을까. 그런 상황에도 주변의 협박과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익희가 급서하지 않았더라면 조봉암은 좀 더 살아서 시대의 소명을 담당할 수 있었을까? 그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조봉암이 법살당한 지 9개월만에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군다나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반대로 조봉암의 죽음 또한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아쉬움이 달래질 듯 하기에... 


다행히 조봉암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재판은 바로잡아졌다. 지난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 합의부는 재심을 열어 죽산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는 유가족에게 큰 보상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독립유공자로서 서훈 수여가 유보된 것은 한가닥 아쉬움이다. 정황 상 일본에 의해 거짓으로 성금 모금 광고가 신문에 실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광고 하나로 인해 친일 행적이 있기에 신청이 반려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이 사회의 '정의'가 어디에 있는 지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또한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언제쯤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하는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나라의 역사를, 그것도 승자에 관점에서만 기록되고 왜곡된 것이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도 보여지는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될까? 김산평전과 약산 김원봉, 그리고 죽산 조봉암. 이 세권을 책장에 잘 꼽아 놓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게 해야겠다. 그리고 말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 역사 속에 뿌려진 뜨거운 피와 젊음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함을, 그렇기에 우리는 의를 위해서는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그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거두어야 함을...


"우리가 못 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조봉암 옥중 유언>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