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날때부터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과 무관한 여자들을 보았던 탓도 있겠지만, 어떤 것이든 타고난 것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결정론 자체가 조금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에게는 부성애와 같은 감정이 도대체 언제 생길까가 참 궁금했다. 내가 임신했다고 얘기할 때도 남편은 드라마에서처럼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임신 기간 내내 들떠 있지도 않았고, 아기를 낳은 후 키울 때에도 남편은 한발 물러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해서 구박도 많이 받았고, 육아에 관한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 남편이라는 농담도 종종 했다. 더불어 사랑의 크기로 비교해보자면, 모성애 다음에 조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이모성애, 고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조부성애가 있고, 제일 뒤에 부성애가 있다고까지 자신 있게 얘기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한 것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 내 지인들의 경험을 대충 버무려서, 보편적인 모습을 뽑아내어 일반화 시킨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엄마보다 아이와 훨씬 더 친밀한 아빠들도 있고, 엄마보다 아이의 필요 - 기저귀 교체, 젖병 물리기, 음식 만들기 등 - 에 훨씬 더 능숙하게 대처하는 아빠들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개인의 성향 및 취향, 성격 탓으로 돌려야 하나? 이것 또한 선척적으로 그래~라고 일갈해버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결론이 되어 버리니 맘에 드는 결론은 아니다.
이 땅의 남자들은 지금의 아빠상과는 전혀 다른 아빠들 밑에서 자라왔다. 그 아빠들을 보면서 아빠 수업을 했고, 일부의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자라 자기 스스로 아빠 되는 법을 배우면서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아빠들은 과거의 아빠들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든 경제적 책임을 떠안은 채 아내에게 안 살림을 일임하고, 자식이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집구석에서 애들을 어떻게 키운 거냐고 큰소리 치는 남자가 과거 대부분의 아빠들이었다면, 지금의 아빠들은 그와는 좀 다르다. 많은 젊은 남자들이 친구같은 아빠인 '프레디'를 지향하고, 간혹 섬세한 남자들은 아가용품을 직접 만들며 2세를 기다리기도 한다. 남자들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보장되었고, 출산 휴가 정도는 눈치 보지 않으며 자유롭게 쓴다. 공무원 조직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실행에 옮기는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기를 키워주신 아빠의 모습에서 조금 더 이상적인 아빠의 상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아버지상을 만들어 나가는 젊은 아빠들이 지금은 당연한 게 되었다. 보면서 배우고, 부족함을 느끼며 또 배우는 과정에서 시대의 아버지상은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에게 모성애가 철철 흘러 넘치는 게 아니듯이, 남자들이 아빠가 되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자녀들의 양육을 어머니들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여 싱글맘일 경우, 아빠의 존재가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하고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만들어주거나, 스스로 그런 역할까지 감당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 제목과 광고 문구에 비해서 너무 이런이런 아빠들이 있다는 나열식이다. 남자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고 읽었는데, 그냥 내가 남편에게 늘 하던 잔소리를 책을 통해 보는 느낌이랄까. 부유수유 같은 조금은 쇼킹한 얘기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까지 굉장히 많이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너무나 아빠와 엄마를 남여의 성역할에 고정시켜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거부감도 드는 게 사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아빠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쨌든, 세상에 어떤 아빠들이 있는 지, 이 땅의 아빠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