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비스 엔트호번(갈매나무)

맏딸, 즉 장녀가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지니기 마련인 특유의 기질이 범세계적이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놀랍고 흥미로웠다. 동양문화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는 맏딸의 불합리한 의무 아닌 의무가 지독한 편인데 크게 봤을 때 서양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뿌리에 깔린 성차별 의식이랄까 여자라서 여자이기에 당연시 여겨왔던 온갖 악습과 잘못된 고정관념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절로 혀를 차게 만들었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는 여성의 인권이 옛날에 비해 꽤 높아졌고 특히 동양보다는 서양이 더 앞서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차별과 부조리한 성의식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어서 맏딸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사고방식과 성격이 그 나름의 일장일단에도 불구하고 안쓰럽다.

책 내용은 맏이이자 막내이기도 한 외동인 내가 읽기에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맏딸을 둔 엄마이기도 해서인지 은근히 몰입해서 읽었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맞아, 정말 하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 딸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들이 딸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와 둘째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 되도록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지만 사실 어쩌면 공평하게 대한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첫째라서 부모의 기대치가 높고 그만큼 어깨도 무겁겠지만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외동으로서 첫 번째 자식으로서 부모의 전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는다. 둘째는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할 수 없는 ‘외동’으로서의 황홀한 기억이 첫째는 있는 것이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첫째에게 출생순위는 물론 서열도 밀린다. 첫째를 잘 따라야 하고 첫째가 쓴 물건을 물려받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첫째와 둘째 둘 다 여자일 경우를 전제로 한다. 첫째가 여자인데 둘째가 남자면 상황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둘째는 부모의 재간둥이이며 부모의 걱정과 보살핌을 언제까지고 마음껏 차지할 수 있다.
우리 딸과 아들만 떠올려 보아도 첫째와 둘째의 장단점과 특유의 기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째인 딸은 언어 능력이 뛰어난 편이고 독서를 좋아하고 공부도 잘한다. 둘째인 아들은 그 반대다. 공부를 대놓고 못하지는 않아도 좋아하지는 않으며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즐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구는 것은 첫째인 딸이고 잔꾀를 부리고 요령 있게 구는 것은 둘째인 아들이다. 융통성이나 처세술 역시 딸보다는 아들이 낫고 친구를 사귀는 능력도 딸보다는 아들이 더 뛰어나다. 부모다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주는 것은 아들보다는 딸이고 무슨 일이든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은 역시 아들보다는 딸이다. 우리 아이들을 관찰하고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책은 맏딸과 그 동생들과의 차이를 잘 정리해놓아서 감탄했다. 맏딸들은 각자 피를 나눈 형제자매보다 다른 가족의 맏딸들과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고 나오는데 읽는 내내 크게 공감했다.


맏이와 맏딸은 다르다. 첫째와 둘째, 셋째 등 출생순위는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자라면서 그 특유의 기질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중에서도 맏아들과 맏딸은 엄연히 다르다. 아마 둘째 아들과 둘째 딸도 다를 것이며 셋째 아들과 셋째 딸 역시 다를 것이다. 이 책이 가치 있는 것은 ‘맏딸’에 관해 연구하고 조사해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맏딸을 주제로 했지만 맏딸이 아닌 사람들도 읽어보면 도움이 되는 책이다. 맏딸인 사람도, 맏딸을 키우는 엄마도, 맏딸을 아내로 맞이한 남자도, 맏딸로 태어난 시어머니가 있는 며느리도, 맏딸을 형제자매로 둔 둘째딸이나 막내 동생도 맏딸이 궁금하고 맏딸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