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날갯짓
연하 2020/02/0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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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 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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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19-12-27
: 1,123
<진주>리뷰
<그녀의 날갯짓>
나만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옅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이야기를 꺼내준 작가에게 고마움 마음이 든다.
그저 아이로서 살아갈 수 없었던 작가의 시간이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린 딸은 혼란스러운 세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려 애쓰는 글을 일기에 썼다. 글 끝에는“경시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공부 열심히 해라”는 선생님의 답글이 있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고민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이 화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외롭게 한 게 아닐까. 그저 실컷 말하게 해주고, 들어 주기만 했어도, 그토록 멍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실컷 토해내게 한 다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얘기해줬다면 어땠을까? 아이 입에서 나올 얘기가 두려웠겠지. 듣는 것도 무서워 입을 막아버린 거겠지. 아이 입에서 나올 진실이 무서웠고,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알기에 그저 피하고만 싶었겠지.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위선자, 위선자들.
그들은 말한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라고. 옆에서 나자빠지고, 잡혀가고, 두들겨 맞고, 병신이 되어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그들 중 나의 아빠도 있었다. 아빠는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일찍이 기술을 익혔다. 고물기계를 한 대를 사서 누나 집 창고에 공장을 차렸다. 새벽부터 밤까지 기계를 돌려 우리의 밥을 만들고, 신발을 만들고, 책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밥과 신발을 가지는 대신에 공부를 잘 해야 했다. 아니 정확히는 오빠였다. 적자생존의 살벌한 세상을 사는 아빠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다. 14개월차이로 오빠와 키가 비슷했던 나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오빠 밥을 챙기고 집안일을 했다.
날마다 오락실을 가는 오빠를 찾아오고, 학원에 빠지지 않게 해야 했다. 오빠가 공부에 취미가 없는 것은 부모님의 큰 근심이었고, 자신들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오빠를 더욱 잘 챙겨야 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필요가 없었다. 조력자로서의 삶. 그것이 내 역할이었다.
어른과 같은 눈높이를 가져야 했던 아이의 삶은 어땠을까? 아이다움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빠는 엄마를 때리며 “아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게 너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다 오빠를 때렸다. 엄마는 오빠가 매 맞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나의 머리채를 끌고 나와서 너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이지 못했던 나는 어른도 되지 못했다. 뭔지 모를 억울함에 짓눌려 있었지만, 원인은 물론 헤어나오는 길도 찾을 수 없었다. 속은 피해의식으로 썩어가도 겉만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애쓰며 살았다. 아무 문제 없다고, 나는 괜찮다고.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누군가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계속 곁에서 말해주는 단 한 명이 있었으면. 그러면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딸보다는 엄마로서 살고 있다. 나는 딸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남편과 별거한지 3년이 지났다. 아빠와 살지 않는 삶을 아이에게 주었구나. 이렇게 또 다른 결핍을 만들고 말았구나. 이제는 원망할 사람조차 없는데.
처음에는 소설 속 작은 아이가 안쓰러워 목이 메이다가 혼자 딸을 키우며 남편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속옷을 사면 쌀을 살 돈이 없는데, 속옷 가게에서 서성이던 엄마. 고달프고 외롭지만 약해져서는 안 되는 삶. 그 속에 나의 아빠와 엄마도 보이고, 내 모습도 겹쳐서 보였다.
이제 72세가 된 나의 아빠, 평생 노동으로 지친 육신을 가진 그에게 이제와 원망할 수는 없었다. <진주>를 읽고,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장혜령 작가가 자전거 타는 아이 말고 뒤에서 앞만 보라고 소리치던 아빠를 알기 위해 민주화운동사업회 사료관을 찾아갔던 것처럼. 나도 월남전을 갔던 아빠를, 돈이 없어서 중학교를 가지 못했던, 그래서 양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아빠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아버지뿐 아니라 작가 자신도 감옥에 갇혔던 과거를 해방시키는 노력이었으리라. 이제는 자유롭고 싶은 이의 날갯짓일 것이다. 그곳에서 일으켜진 바람이 나에게도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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