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올해 일흔한 살이다. 엄마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편이지만 늘 통한다고는 볼 수 없다. 엄마와 나는 과거의 일, 특히 아빠에 대한 기억과 입장이 꽤 많이 다르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빠를 엄마는 아직도 원망한다. 아빠의 직장을 자주 옮기고 바람을 피우는 등 속을 많이 썩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엄마의 원망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아빠는 남편으로서는 엉망이었을지 모르나 아버지로서는 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푸념이 더 듣기 싫은 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에게 지겹도록 아빠 욕을 들어온 탓도 있다. 30년 넘게 이어지는 엄마의 똑같은 레파토리를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넘겨버린다. 작년 엄마가 일흔이 된 후부터는 가끔 ‘아, 언젠가는 엄마의 푸념도 그리울 날이 올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귀에서 튕겨버리는 것도 습관인지, 쉽게 엄마의 말은 내게 와 닿지다.
<그랜마북>은 손주가 할머니에게 하는 질문과 빈칸으로 이뤄진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된 지금, 개인적인 삶과 노년 이후의 삶, 꿈과 소망에 대한 질문이 책에 가득하다. 그동안 무수히 엄마와 대화를 해왔지만, 이 책의 빈칸 중 내가 채울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엄마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이 빈칸들이 내게 공허함과 후회로 밀려올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작정을 하고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처녀 때 빵집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5월의 어느 저녁, 나는 엄마에게 그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날 엄마는 50분 가까이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열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빵집 딸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딸들이 학교 간 사이 자신은 빵집에서 빵을 판 이야기. 자신과 위아래로 한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주인집 딸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갈 때 부럽지 않았는냐고 묻자, 엄마는 전혀 부럽지 않았다고 했다. “빵집에서 일하기 전에 어릴 때부터 남의집 농사일을 하도 많이 해서, 빵집 일은 일 같지도 않았어. 월급 따박따박 주고, 밥도 주인아주머니가 해주시고, 나는 정말 대접받는다고 느꼈지.” 아, 우리 엄마에겐 학교란 남의 세상 이야기였구나.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집에 돌아와 엄마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한글파일에 정리를 해보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마치고 엄마네 집에서 나오던 순간,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랜마북>을 발판 삼아 엄마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해보고 싶다. 나이 든 엄마와 한 발 가까워지게 하는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