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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shim님의 서재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 이철희
  • 12,600원 (10%700)
  • 2020-02-06
  • : 90

올해 일흔한 살인 엄마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요즘이 제일 맘 편하고 즐겁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엄마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고 드시는 약도 없다. 아직 건강하다. 혼자 사시니 특별히 챙겨야 할 누군가도 없다. 자유롭다. 그러나 이것 만으론 엄마의 만족감을 설명할 수 없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엄마는 생활이 늘 쪼들렸다. 다달이 자식들이 주는 얼마 안 되는 용돈과 20만 원도 안 되는 국민연금으론 친구들과 만나 근사한 식사 한번 하기도 버거웠다. 겨울에 보일러는커녕 전기난로도 맘 놓고 못 틀던 엄마가, 난방으로 전기세 5만 원이 나와도 맘이 편해진 건 기초연금으로 25만 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월엔 30만 원으로 올라 엄마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엄마는 이게 다 대통령을 잘 뽑은 덕이라 여긴다. “내가 대통령 하나는 잘 뽑았지.” 엄마의 자부심이다. (이게 박근혜의 공약이었단 걸 엄마에게 말해주려다 말았다.)

 

정치평론가이자 현 국회의원인 이철희 씨가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를 펴냈다. 제목에 답하자면, 적어도 우리 엄마의 삶은 바뀌었다. 그것도 꽤 크게. 하지만 그 이외의 영역에선 정치와 삶에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딱히 찾지 못하겠다. 어쩌다 관심 있는 주제가 있어 정치인들이 나오는 토론회라도 볼라치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게 된다. 모든 주제를 ‘정치적인 정략’으로 해석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특권을 누리는 데 익숙한 듯 국민 앞에 호통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나의 이런 태도는 이 책에 의하면 ‘반정치의 정치’에 영향을 받은 탓이다.

 

“정치에는 2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거나 못하도록 하는 정치다. 정치는 나쁘고 더럽고, 유해하다는 전제하에 정치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정치의 정치’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시장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가 개입하는 것이다. ‘1인1표’의 민주주의를 통해 ‘1원1표’의 자본주의를 조절하는 장치다. 이는 ‘반시장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크게 보면 반정치의 정치가 득세하는 나라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어렵다. 반면 반시장의 정치가 득세하는 나라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편하다.”

 

내가 ‘반정치의 정치’ 정서를 갖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정치는 숙명적으로 실망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갖는 특권에도 불만이 많다. 게다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의회에서 토론하고 다투는 건 당연한 일인데 내겐 마냥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 건, 저자의 ‘1원 1표’와 ‘1인 1표’를 비교해놓은 대목 때문이었다.

 

“시장의 논리인 1원 1표에 비해 정치의 논리인 ‘1인 1표’는 부자에게 불리하고 서민에게 유리하다. 부자는 소수고 서민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를 통해 서민의 이해가 많이 반영될수록 시장의 강자인 기업과 부자들로서는 손해를 보기 쉽다. (중략) 결국 반정치의 수혜자는 현실 정치인과 그 경쟁자들이고, 피해자는 유권자다. 정치 혁신은 반정치론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정치 관심론, 즉 유권자들이 문자 그대로 ‘권력을 가진 시민’으로서 잘 지켜보고 평가하고 상벌로 심판할 때 이루어진다.”

 

이철희는 35년 가까이 정치와 관련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전문가답게 책에는 정치 이론과 다양한 정치인, 경제인들의 주장, 정당과 의회가 돌아가는 원리 등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처음 접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단어와 적절한 예시를 사용해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내용까지 가볍진 않다. 천천히 읽다 보니 책의 4분의 1은 아직 읽지 못했다. 워낙 낯선 내용이라 한 번에 머릿속에 넣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책의 맨 위쪽 빈칸에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적어두었다. 적어도 선거철이 오면 내가 손수 적은 문장이라도 다시 읽으며 정치에서 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다. 이 책을 나처럼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우리 엄마처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읽고 공부했으면 한다. 최소한 “그놈이 그놈이야”라는 말을 쉽게 하거나 소중한 “1인 1표”의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을 테니까. 책을 읽고 나니 내 한 표가 새삼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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