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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채식에 관한 책을 읽은 뒤 2년 동안 고기를 끊었다. 30대엔 이따금 외식으로 돈가스나 갈비를 먹었다. 그래도 집에선 고기로 요리를 해 먹진 않았다. 그런데 결혼한 뒤론 냉동실에 삼겹살이나 양념 고기, 돈가스 등 고기를 늘 쟁여두게 되었다. 한번 채식을 한 터라 돼지고기나 치킨을 먹을 때면 늘 죄책감이 들었지만 고기에 길든 입맛, 조리의 간편함, 냉동실에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편리함 등 고기의 이점을 놓지 못했다. ‘나 정도면 많이 먹는 건 아니니까’ ‘채소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라고 합리화하며 죄책감을 애써 털어냈다.
몇 달 전 글쓰기 수업에 한 수강생이 소와 돼지들이 도살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참혹한 모습을 글로 써왔다. 그날 이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채식이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고,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걸 알지만 선뜻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채식’은 일종의 가치관이라 주기적으로 재주입이 필요하고, 의식적으로 다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게도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머뭇거리던 나날 중, 이 책 <나의 비거니즘 만화>을 만났다. 책 표지엔 주인공인 여자아이가 가슴에 두 손을 모은 채 당근과 버섯, 잎채소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있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서. 그림 자체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책 표지엔 비닐코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 아, 이 책 뭔가 심상치 않겠구나, 생각했다.
책은 담백한 그림체와 함께 채식과 ‘고기’로 길러지는 동물, 환경 전반에 대한 내용을 53개의 에피소드 안에 충실하게 담았다. 그림과 글 어느 것 하나 치우침 없이 적절히 서로를 보완한다. 대개 채식주의와 환경 관련한 책을 읽으면 마음이 괴롭다. ‘동물권’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 부분을 정면으로 상세히 다룬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느껴지지만, 이 책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비건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며 충만함을 느끼는 이야기,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되 찾는 찡한 이야기, 중고 옷가게에서 ‘한정판’ 옷을 고르고 마트에 장바구니를 가져가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등 ‘지극히 보통의 일상’을 살며 ‘작은 점 같은 노력은 촘촘히 엮여 언덕만 한 융단이 되어 커다랗게 반짝일’ 어느 날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소소한 이야기가 감동적이면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동물권에 대한 지식과 비건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도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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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채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거나, 육식을 하며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느꼈거나, 나처럼 채식을 하다가 다시 육식을 하며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 채식을 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 그리고 지금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육식을 신봉하는 사람을 채식하게 만드는 건 몹시 어렵다. 그러니 관심 있는 사람이 먼저 이 책을 읽고 만화 속 주인공처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조금 더 마음을 다잡고 선택을 굳건히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서도 비건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채식하기 좋은 세상이 점점 다가온다. 다른 생명을 일평생 괴롭히다 급기야 생명을 빼앗는 일도 같은 속도로 줄어들면 좋으련만. 이 책을 읽으며 생명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꿈꿔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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