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배차 간격이 넓고 승객도 드문 데다 목적지도 낯선 버스에 불쑥 올라타게 된다 해도, 우리는 정류장에서 기다렸던 시간을 함께 태워서 떠날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게 된들 우리가 만든 문장은 이미 몸에 배었으니 값없이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18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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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접하면서 '정류장 그리고 필사' 상관관계에 대해 작가가 그리고 싶어하는게 뭘까? 읽는 내내 고민 고심하면서 그려갔다.
정류장에는 오랜시간을 머물수 있는 곳은 아니다. 기다리고 떠나고 내리고 다시 기다리기를 수없이 반복되는 곳이다.
우리의 삶에 대입시켜 보면 정류장과도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맏딸은 동생에 비해 아무것도 자신있는 것이 없다. 그런 자신에게 여동생은' 꿍꿍이가 있는 사람'이라고, 아버지만' 세심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동생에 비해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답답한 자신의 모습속에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일반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나는 하고 싶은게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것도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른 척 무시하고 안 보이는 척 외면해왔던 것이다. (62p)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걸 밝혔다. 티끌보다 더 작은 것이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안간힘을 중력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쳐든 연하디연한 작은 싹과 같은 나의 희망에 대해서,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했다. (63p)
맏딸은 동생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시"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그 창백한 연두색 싹이 불쑥 커 올라 이파리를 막 뻗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동생의 도움으로 야간대학 문예창착을 다니게 된다 글쓰기는 어렵고 그 어느 누군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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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한 후 다시 글을 접했을 때 새순이 돋아나는 마음을 읽은 적이 있었다. 문장수집을 하고 난후 작은 나의 감정과 경험을 적고 행복감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어느날 동생이 데리고 들어온 어린 아이 둘을 맡아서 키운다.
답답해지는 대목이지만 맏딸은 집안일과 육아로 힘든 시간을 겨우겨우 보내는 사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변화을 가지고 온다.
익숙한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힘들다. 더욱 맏딸이 책임지고 있는 곳에는 읽는 내내 힘겨웠다. 아마 우리가 변화을 가져 올 때 처럼.....
내가 살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은 시를 쓸 때뿐이라는 걸 떠올렸다. 더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시를 쓰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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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못한 꽃이라고 말한 어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맏딸은 목련빌라를 떠날 준비를 한다.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말이다.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건 사치스럽다고 할까봐 그리고 현실에서는 괴리감이 감돌기 때문이랄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시인이라고. 시심을 품은 자가 시인이니 시를 읽을 줄만 알아도 시인이라고 한다는 말이 맞지 않을까?
비로소 '정류장과 필사'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수많은 사연속에서 기다릴때도, 떠날때도 있지만 우리몸에 배인 언어의 흔적이 '시'로 필사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작가의 깊이를 더 알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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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