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김수영의 시 ‘봄밤’중에서
책이 나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안녕 주정뱅이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천천히 마시는 주인공에 매력을 느끼는 나
‘매초 매초 알코올의 메시아가 들어오는게 느껴집니다‘라는 대사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인사말 ‘술 한잔 해야지’
책 선택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어느정도 나를 아는 사람,갸웃하는 사람은 아직 나를 모르는 사람
비가 내리며 싸늘한 기운이 스쳐갈 때,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소리가 그리울 때
나는 소주가 생각난다.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그 시절을 건너게 해주었던 술이라는 친구. 묵묵히 쓰라린 내 감정을 읽어주고 달래주던 친구. 나와 싸우기도 했던 친구,이책은 그런 친구들 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단편집 각각에 술을 매개로 대화가 이어지며 그들의 솔직한 감정들이 드러난다. 마치 우리 술자리가 그러듯이.
나약한 정신을 갖고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이라 함부로 말하지 말기를,,
네가 못해준 위로를 술이 해주었고, 그 속에서 외로움을 이겨냈고 내 감정의 밀도를 알아가며 세상의 편견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안녕 주정뱅이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중에 가장 지독한 주정뱅이, 맥주 두 캔 과 소주 한병을 비우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은 영경,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불치의 병을 앓고 결국은 죽어간 수환의 이야기,‘봄밤’이 가장 인상깊었다.
사람에 의해 받은 상처를 사랑으로 극복하여 행복하게 잘 사는 이야기,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젠, 소설속에도 없다.
류머티즘의 합병증으로 더 이상 슬퍼도 울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된 수환, 알코올중독으로 감정조절 장애로 자주 우는 영경.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 수환도 기억을 못하게 되었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되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 뭔가를 찾아 다닌 영경의 행동 속에서 본능적으로 살아남은 그들의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술과 영원한 친구가 되지 못하고 무너진 영경이 미웠다. 그러나
영경이 김수영의시 ‘봄밤’에 나오는 마지막 부분을 또박또박 반복할때
-----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靈感이여 -----
서둘지 말며 절제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그녀의 의지가 느껴졌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알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 많이 있지만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주정뱅이의 이야기를 이 소설을 통해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