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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사님의 서재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 16,200원 (10%900)
  • 2019-01-23
  • : 8,923

 

“산 자는 거짓을 말하고 죽은 자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게 현실이야.” (SBS 드라마 싸인 중에서)

 

권력과 돈으로 또는 처벌을 피하고 싶은 생각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어버린 사건을 과학적 증거로 밝혀내는 법의학 드라마를 정말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서 천재 법의학자인 주인공은 시신의 부검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다. 사건을 해결하면서 위협도 받고 같이 일하는 직원이 납치도 되지만 주인공은 이를 극복하고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드라마 속 멋있는 법의학자는 현실에서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우연히 접하게 된 할인행사에서 충격적인 제목의 책을 지은 법의학자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의사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죽은 사람, 시체를 만난다.

시체를 본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 나는 처음 생기가 사라져버린 육체를 봤다. 생전에 따뜻하고 온화하셨던 할아버지는 차갑고 싸늘하게 누워 계셨다. 5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입관 준비를 하던 장소의 엄숙한 분위기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여름이었지만 상당히 서늘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나와 같은 일반인이 평생 몇 번 보기 힘든 시체를 매주 보러간다. 그는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시체를 부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사망의 원인과 사망의 종류를 판단한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과 관련된 사회시스템에 대해 깊게 고민한다. 저자는 책에서 TV를 통해 알려졌던 윤일병 사건과 문경 십자가 자살 사건, 만삭인 아내를 살해한 의사의 이야기, 이미 목을 졸라 살해한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시킨 사건 등 개인 및 조직이 진실을 감추려고 조작한 사건들을 부검을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진실을 밝혀낸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그리고 사망원인을 판단할 때 고려해야 될 사항들과 자연사(自然死), 외인사(外因死), 불상(不詳)과 같이 사망의 종류를 분류하는 법의학적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연명의료 중단, 안락사, 존엄사와 같은 개념을 포함하는 ‘환자의 죽을 권리’와, 이에 맞서는 ‘의사의 살릴 의무’의 갈등과 같은 죽음과 관련된 여러 논란들에 대해 소개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왜 죽음을 공부해야 되고 준비해야하는지,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은 죽음(well dying)인지’에 대해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 자살과 같은 불행한 죽음에 맞서는 의사,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껏 생각하지 않았던 죽음이란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 재수 없는 일, 무섭고 두려운 일로 치부하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저 앞만 보며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나에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가능성이 있는 나에게 지금 죽음을 준비하라고 한다면 정말 쓸데없는 짓일 수 있다. 먹고 살아갈 문제, 자식 문제, 노후 문제 등 신경 쓸 것이 차고 넘쳐서 죽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지만 이 책은 나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라고 말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 길이가 길던 짧던 언젠가는 반드시 끝난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남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질 것이며, 조금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죽은 사람이 사후에 신을 만나서 얘기하는 내용을 담은 ‘죽음에 관하여’라는 웹툰이 있다. 이 웹툰에서 앞만 보고 살아서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청년이 죽은 후 신을 만나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신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그리 멀지 않아. 어렵지도 쉽지도 않고 그냥 있는거지, 곁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분명히 후회해. 지금의 너처럼. 죽음은 나와 상관없다고 먼 미래니까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냥 알고만 있으면 돼. 그것만으로 변할 거야. 후회하지 않으려면 알고 있어야 해. 기회는 없어. 넌 죽어버렸다. 삶은 단 한번 뿐이야. 무슨 반전을 기대해? 반전은 숨 쉬고 있을 때만.”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만큼 미련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일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줄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후에는 ‘잘 죽고 싶다’라는 소망이 생겼다. 잘 죽기 위해서, 죽을 때 후회할 일을 조금 줄이기 위해서 나중이 아닌 지금 잘 살아야겠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있다. 아들로, 학생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다. 더 늦지 않게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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