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가장 손 잘 닿는 곳에 두어야 할 책
samgooggy 2018/05/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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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은 엄마와 이별한다
- 최해운
- 12,600원 (10%↓
700) - 2018-05-07
: 350
한동안 책을 앞에 두고 펼쳐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미 20여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저자와 비슷한 나이에 아버지를 여윈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안다.
아버지는 엄하신 분이었고, 살갑게 대해 주신 적이 많지 않았는데도, 돌아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흘렸던 그 많은 눈물이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이다.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집과 동네가 너무 생소해 당황스럽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상상도 못하겠다...
사실, 책 제목만으로 어느 정도의 내용이 예상되는 측면도 책 표지 이후를 넘겨보지 않도록 하는데에 한 몫 하고 있었다. 나는 굳이 지금 겪지 않아도 될 슬픔을, 나중에 흘려도 될 눈물을 벌써 흘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한동안 책표지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용기내어 표지 이후를 넘겨보길 잘 했다고, 이렇게 엄마와의 이별 예행 연습을 한번 해 볼수 있도록 해준 저자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눈물 짜내는 슬픔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씩씩함을,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얘기해 주어 더 고마웠다.
작품은 저자가 엄마와 이별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저자는 이렇게 첫장부터 눈물샘을 터트리지만 사실 책을 다읽고 다시 돌아와 읽어보면 이제는 정말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꺼이꺼이 울게 된다).
이후 저자는 과거로 돌아가 8남매를 홀로 키우신 어머니의 고단하였지만 굳세었던 한평생을 돌아보고, 저자가 조금은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어머니를 자신의 집 '구원투수'로 모셔오면서 벌어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고부갈등, 모자갈등, 세대갈등 등 우리네 인생과 삶 전반에 대해 담담히 풀어내며, 어떻게 하면 아들로써 남편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팁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암의 재발 이후 어머니의 병세가 깊어져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신 이후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의 이사' 일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고, 죽음을 직시하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충실히 준비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그 과정을 특유의 씩씩함으로 너무도 잘 견뎌내셨다.
죽음이 일상인 호스피스 병동의 생활이 오히려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정하게 하고 슬픔 넘어까지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 한 일이기도 하지만,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한편 저자는 자신을 무심한 자식으로, 심지어 청개구리로 부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을 것이며, 부모의 부재 앞에 후회하지 않을 자식이 하나라도 있을까...누구나 저자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자동차 정비센터 등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주룩주록 울었다. 정비센터 대기실에서도 혼자 꺼이꺼이 울고 있던 중 직원이 점검 다 끝났다고 하면서 나를 찾는데 사태를 수습하느라(?)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직원이 그냥 나가버리는 바람에 직원을 잡으러 나갔고 직원은 벌겆게 된 내눈을 보고 뭔일이 있나 의아해 하기도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참으로 진실과 진심의 힘은 놀라운 것 같다. 무명작가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단정한 문장 덕에 더 잘 읽힌 측면도 있지만,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그리는 사무치는 마음..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갖고 있는 그 진심을 잘 대변해 주었기에 더 큰 감동을 주는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이 책에 대해 신경숙보다 담백하고 한강보다 다채롭다는 평을 내놨던데, 나는 신경숙도 한강도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이 참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삶의 다채로운 면을 잘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잘 찝어낸 평인 것 같다.
청개구리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상 손 잘 닿는 곳에 두고 표지라도 제목이라도 자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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