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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끄는 여자
  • 너는 너로 살고 있니
  • 김숨
  • 12,420원 (10%690)
  • 2017-12-15
  • : 626

삶은 한발짝, 한발짝 더 내밀어 용기를 내는 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질문형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편지소설이라는 다소 생소한 구성방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은 병원이 주 무대며 주인공의 기본적인 정보외에는 서사가 매우 절제 되어있다. 선희라는 이름이 딱 한 번 나오지만 주로 ‘나’로 시작하는 일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연극배우라는 이력이 있지만 공연 도중에 발작을 일으켜 무대가 무서워져 간병인으로 전략한 조연배우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경주에 간병인으로 자처하러 내려갈 때부터 자신의 삶이 길 위에 있음을 안다. 결혼도 못한 40대의 여자가 생계를 위해 자처한 간병인은 자신이 원해서 내려오는 일 같진 않아보인다.

 

 주인공이 보내는 편지는 언제나 자신이 돌보는 식물인간으로 향해 있지만 그것 또한 결국 자신에게 던지는 삶의 질문인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그녀가 병원이 무대인 모노드라마의 형식처럼 느껴진다. 소설의 서사를 무시하는 이 이야기는 언뜻보기엔 불친절하기 짝이없다. 한번 씩 불쑥 나타나는 환자의 여동생과 경주 박물관에서 일하는 남편의 등장만 있을 뿐 그 외는 같은 방에 사는 정옥아줌마, 간병인과 환자의 일상. 이정도의 이야기가 서사를 끌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읽다보면 어느듯 작가의 차분한 공기에 들어앉아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게 되고 불쑥 나타나는 인용구들은 주인공의 현재상황을 잘 말해준다. 작가는 아주 조금씩 주인공의 정보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마치 독자랑 밀당하듯이 내가 누군지 알아맞춰보라는 주문을 한다. 편지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공기 탓일까? 주인공이 말하는 독백에 자꾸만 귀가 기울어지고 신경이 쓰인다. 사실 편지소설의 낯선구성 탓도 있지만 주인공에게 자꾸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작가가 마치 그녀의 이야기를 양파 까듯이 하나씩 풀어놓으며 결코 서두르지 않는데에 있다.

 

  주인공 선희는 소설 도입부에서 대만으로 떠난 민이란 친구로부터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민은 나는 나가 없다고도 말하고, 나 없이도 살게 되더란 말에 이 소설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독자는 눈치채게 된다. 이 질문은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와 닿아있다. 주인공 선희는 생각한다. 식물인간인 환자에게 ‘내가 보여요?’라고 묻기도 하고, 청소하러온 여자가 뭘 찾느냐고 물었을때에도 뜬금없이 나를 찾는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환자옆에 붙들어 두는 것은 육체일지, 영혼일지에 대한 독백이 그러하고, 자신이 환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식물인간인 환자가 자신을 돌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이 질문을 통해 병실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며 자신이 서야할 곳은 어디이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식물인간인 환자는 11년동안 침대에서 누워있다. 이름도 경희라 주인공 이름과 비슷하고, 살아온 시간, 즉 나이도 같다. 간호사가 자매지간이 아니냐고 물어왔을 때도 이 둘의 동일시 되는 내용은 여러군데에서 증명이 된다. 현실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을 갖는 주인공이나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벼랑 끝에 서 있는 환자나 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주인공이 그동안 살아왔던 연극배우는 자신이 갈망했던 일이었음에도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힘든생활 이었다. 경주로 멀리 도망나온 여자에게 간병인이란 직업은 육체적으로 무척 고달플 수밖에 없다.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닦이고, 그녀의 대 소변도 정리하다가 결국 환자의 생리주기까지 자신과 맞춰지는 신기한 일들은 곧 환자와 자신이 동일시 되는 지점이다. 주인공은 환자를 돌보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 마치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처럼 노련하며 오히려 환자를 대하는 친밀감은 자매 그 이상이다.

 

  주인공이 누워있는 그녀를 통해 자신을 점점 투영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교감, 이 소설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교감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환자를 다루며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의 실체를 하나씩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병원에는 이 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병으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이라든지 사고 이후 노인이 다시 삶의 초반부인 첫걸음을 하기 위하여 재활하는 모습들은 그녀가 병원에서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기도 한다. 그녀가 식물상태의 환자에게 조금씩 다가가면서 그녀의 존재와 이력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은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다. 소설은 총 9개의 단어로 이루어져있다. 나열해보면, 응시. 몸, 시간, 벽, 거울, 새, 복숭아, 하루, 빛 같은 추상적인 단어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응시에서 빛으로 이르기까지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환자에게 감정 이입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이 서서히 느껴진다.

 

소설을 읽고 그 질문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너는 너로 살고 있니?> 고백하자면 나도 딱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못했다. 나 또한 주인공 선희일 수 밖에 없고 삶의 변방에서 늘 배회하는, 정말 나답게 살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의문을 갖는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작가는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을 한 번 깊이 들여다보라고 주문한다. 소설을 읽는건 타인의 삶을 엿보는 행위다. 그것이 내가 살아낸 삶을 정리하고 살아낼 삶을 앞서 체험하는 것을 본다면 이 소설은 주인공 선희가 강렬하게 식물인간인 경희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자신을 그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해내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억속의 문장을 끄집어내서 자신이 질문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적인 언어들은 가끔은 병원의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처럼 숨통이 트인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철학적 사유는 이 책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장치다. 주인공은 이제 떠나야 됨을 안다. 또다시 일상의 숨고르기를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 그녀가 이제는 더 이상 숨지도 말고 도망치지 않았으면 한다. 뒤로 물러서도 않된다. 삶은 거저 앞을 보며 한발짝 한발짝 쉬지않고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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