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덥고 지치는 여름이지만 저는 여름이 좋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여름을 그냥 보내기가 아쉽습니다.
'여름'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전 주저 없이 '수박'이거든요.
그래서 세상 좋아져 일년 내내 수박을 먹을 수 있다하더라도
수박만큼은 여름이 되었다 싶을 때 삽니다. (보통은 동네 재래시장에 가게마다 수박이 보이면 그때가 바로 수박을 살때)
하늘은 어둡고 온통 비는 종일 내려서 온통 질척이는 듯한 날,
이 책을 넘기며 여름을 보낼 준비를 합니다.
제게 '수박을 샀다'는 '오감이 몽실거리고 마음이 몽글 거리던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여름이 아닌 과거의 어느 여름날로 데려다주던 책이었어요. 과거의 여름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꾸 멈추게 되던 페이지들.
모든 것이 넘치기보다
조금은 모자라도 불편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_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표지를 비롯한 이 책의 삽화에 끌려서 책을 넘기다 마지막 이 책의 헌사를 보고 다시 처음부터 넘기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장에 가는 엄마를 따라나서는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아이와 엄마가 전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지나 찾은 시장.
온갖 냄새와 색, 소리에 홀려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는 그곳, 시장
아이는 마냥 신이 납니다.

이 페이지에서 어릴 때 엄마가 시장을 나설 때면 무작정 따라 나섰던 기억이 났어요.
시장 초입엔 신발 가게가 있었는데 오늘은 구두 하나 사주려나 기대하면서요.
엄마는 온갖 채소 반찬에 생선토막에 가끔은 튀긴 어묵도 사고
분명 신이나 따라온 자리였는데 여기저기 한 바퀴 두 바퀴 돌다보면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엄마 언제가 라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데
입이 점점 튀어나올라치면 엄마는 입에도 주전부리를 넣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건어물 가게에서 말린 오징어채 같은 것을 얻어먹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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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아이 눈에는 수박이 들어옵니다.
기억나나요? 수박 달아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삼각형 모양으로 쓱쓱 잘라 저 칼에 꽂은 채로 건네던 저 수박
생각해보니 요즘 시장에는 수박을 다듬어 썰어주거나, 쥬스로 만들어주기까지 하는데
저렇게 삼각형 모양으로 칼 채 건네는 조각은 사라진거 같아요^^:
통통 두드려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주던 맛보기용 수박.
엄마, 우리 수박 사요, 저 수박 사요.
엄마는 이제 손이 없는데...
내가 들고 갈게.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들면 돼요.
안 돼. 네가 들기엔 너무 무거워.
수박은 다음에 사자.
아빠도 수박 좋아할 거야.
누나도 엄청 좋아할걸.
엄마, 나 수박 먹고 싶어
수박을 사기 전에 엄마와 아이의 대화 부분은 동시 같기도 했어요.
그러고보니 수박은 혼자서 먹을 수 없는 과일이네요.
혼자서 들고 오기도 겁나는 과일이구요.
입안에 들어오기 전까지 수박을 썰고 껍질을 버리고 품이 필요한 과일.
이렇게 조르고 졸라 수박을 들고 오는 길. 전 이 장면이 참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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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끈에 꽉찬 수박을 안고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도. 아이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도
곁눈질로 수박과, 수박을 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노오란 여름빛도.

그런데...집까지 수박을 들고 가는 길이 쉽지 않네요.
아이는 수박은 양손에 꽉차게 들고 가는데 어째, 불안불안하죠?
수박을 사긴 샀는데....이 수박이 제대로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같이 읽은 아이는 엄마가 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수박'이라고 내놓는 부분이 가장 좋았대요.
(수박의 운명이 짐작되시나요?)
요즘 아이들과 함께 읽다보면
아니 이 더운 날 뭐하러 멀리까지 수박을 사러 가요?
배달이 있는데요? 택배가 있는데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고, 서툴러도 좋았던 순간을 추억처럼 꺼내며 읽으면 어떨까요?
그러고보니 이 책의 제목의 <수박을 샀다> 입니다.
어떻게 이 제목으로 지어졌을까?
수박을 살까? 도 있고
수박을 샀어! 도 있는데
수박을 샀다. 라니~
수박은 그냥 먹기만 해서는 모르지.
날 잡아서 어렵게 간 곳에서 힘겹게 들고와 나눠먹는 기쁨을 말이지! 하며 이야기해주는 장면들이었다고나 할까요.
먼훗날 아이에게 이 여름날의 장면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알록달록한 시장의 색으로, 여기저기 손님을 부르던 목소리로?
쓱쓱 탁 하고 베어물던 맛보기 수박으로
지하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순간으로
무거운 수박을 들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게 느껴지던 논밭길로?
올해 수박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아이와 넘기다 보니
수박을 사러 가고 싶네요. 이왕이면 나란히 걸어서
양손에 비닐끈을 잡고, 한손에는 주전부리를 입에 물고 말이죠.
* 이 글은 제이포럼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