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작가의 책이잖아!'
분명 이수연 작가는 매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매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림체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글은 송미경 작가님!!!
송미경 작가님과 이수연 작가님이라
두 분의 콜라보가 처음이었던가?
어째서 처음이지? 왜 진즉 만나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던 조합.
그동안의 두 작가의 작품을 떠올려보니 글과 그림에서 두 분의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이수연 작가 하면 특유의 푸른 빛에 따스한 노란 빛이 떠올라요.
송미경 작가의 글 또한 외로움, 엉뚱함 속에 깃든 따스함이 떠오르구요.
현실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환상적인 글과 그림의 만남이랄까요.
기대감을 안고 책을 기다렸고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면지에서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밖에서 누군가를 몰래 보는 장면일까?
유리는 나를 입지 않아요.
물론 옷장에서 꺼내지도 않죠.
유리는 왜 나와 함께 놀지 않을까요?
첫 시작부터 흥미롭습니다.
옷장 속 옷의 독백이라~
아하!
면지 속 장면 바로 옷장에서 유리는 지켜보는 코트의 시선이구나!
이제야 방 전체가 보입니다,
화려한 방이네요.
펼쳐진 악보와 열려있는 피아노 건반, 수많은 액자 더 화려한 벽지의 무늬.
한 쪽에선 뜨개질에 반려식물을 뒤로하고 인형과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군요.
취향 부자, 유리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찬 공간 속엔 나름의 질서가 엿보입니다.
옷장 서랍이 인형이 잠드는 곳.
그 위 착착 종류별, 색깔별로 정리된 옷장
이 중에 또다른 주인공 '코트'는 어떤 것일까?
코트와 유리가 번갈아 화자가 되며 독백을 하고
페이지가 분할되는 구성도 특이했어요.
왼쪽 상단에서 유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가 햇살도 비바람도 맘껏 맞고 싶은 코트의 바람과
오른쪽 아래 아끼는 코트를 본 모습 그대로~ 조금도 손상되지 않게 절대로 입고 나가지 않을거라는 유리
서로의 입장차가 절로 느껴지는 구성이랄까요? 한쪽에 그림, 한쪽에 글을 배치하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어긋나는 대화같기도 하고, 과연 유리와 코트가 같이 동행하게 될 날이 올까 궁금해졌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좋았던 장면입니다. 홀연히 단추 하나만을 남겨두고 창밖을 뛰쳐나간 코트라니!
이 책을 받자마자 떠오른 그림책이 있었는데 바로 사노요코의 <아저씨우산>이었거든요.
우산을 아끼는 마음에 비가 내릴 때도 펼칠 수 없던 우산.
그때 아저씨는 비를 맘껏 즐기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우산을 펼칠 용기를 내게 되는데
유리에게도 '곁에 그런 목소리를 내 줄 존재가 있을까? '하고 또다른 존재가 등장하려나 하며 페이지를 넘기니
코트가 스스로 창문을 넘어 날아가던 저 장면에서 헉~ 하면서도 왜이렇게 속이 시원했을까요?

비로소 꽉 찬 화면 가득 코트가 펼쳐지고~ 코트의 목소리도 왼쪽 상단을 넘어갑니다.
그야말로 날아가는 새가 떠오르는 장면이었어요. 코트가 향한 곳은 어디었을까요?
이 장면에서 지난 제이포럼에서 짧지만 작가님과 함께한 워크샵도 떠올랐습니다.
이 부분은 잉크일까 물감일까 궁금해지면서
자유롭게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작가님의 집중한 모습이 떠올랐구요
지난 워크샵에서 아니 이런 재료로도 그릴 수 있나?
한낮의 더위도 잊을만큼 마구 붓을 튕기고 흔들어대며 해방감을 느끼던 그 때가 떠올랐습니다
훨훨 나는 코트처럼 말이죠^^
유리는 쑥쑥 자랄 거예요.
나는 점점 낡겠지만 괜찮아요.
.
언젠가 코트는 내게 작아질 거예요.
그땐 입을 수 없겠지만 괜찮아요.
마침내 코트와 유리의 목소리가 한 화면에 나란히 마주서면서 등장하는 이 부분에서
화면가득 채우는 노란 빛깔은 절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평은 지면 공개 제한이 있으니~ 생생한 색감과 이 그림책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그림들. 글과의 조화는 직접 책장을 넘기면서 확인하세요^^)
서로 함께 있다는 감각
마지막 면지의 옷걸이에 걸린 코트에서 설레임이 느껴집니다
바로 유리와 한 몸이 되어 어디라도 갈 준비가 되어있으니.
책을 덮으면서
살아있다는 것은
'오늘' 내게 주어진 것들을
오로지 지금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의 모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젖을 지언정
여기저기 얼룩이 묻을지라도
때로는 뜯겨지고 일부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순간을 누려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지요.
그게 바로 '오늘'의 코트여야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한편으로는 내게 '오늘'의 ----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오늘' 온전히 누리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도 떠올랐습니다.
서평응모 당시 들었던 고이 모셔두고 있는 물건들 외에도
어쩌면 나에게 코트는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겠고, 꼭꼭 눌러둔 욕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벽지 무늬 속의 새가 아닌
진짜 새들과 비바람을 만끽하는 코트의 장면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온 책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1월에 만나 더 좋았던 책.
지금 내가 고이고이 모셔두기만 한 것들을 꺼내
함께 볕도 쬐고 비바람도 맞아야지
어쩌면 유리가 두려워한 것은 '처음 코트의 모습을 잃게 되는 것' 너머 '따갑고 차갑고 넘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내게 꺼내지 못한 코트는 무엇이 있을까?' 자꾸 내 마음 속 옷장도 열어봐야겠습니다.
*이 글은 제이포럼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