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프린들 주세요>의 후속작품이 나왔다고?
앤드루 클레먼츠 작가의 책의 매력을 아는 사람은 작가님의 책을 연달아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데 유일한 진입장벽이라면 선뜻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표지'라 할까?
워낙 여기저기서 앤드루 클레먼츠의 책은 아이들이 꼭 읽어야할 책, 교과서에 수록된 책으로 알려진지라~ 제목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거나, 학교에서 온책읽기 도서로, 권장도서로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프린들 주세요'가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25년만에 나온 후속작!~ 25년만에도 후속작이 나올 수 있다니, 게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라니~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난 교사였기에 누구보다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았던 작가. 어쩌면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아이들,교사, 학교.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
전작이 한 학생이 만든 '신조어'를 두고 벌인 소동이었다면, 후속작에서는
'전자책과 종이책', '코딩과 글쓰기'를 화두에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펼쳐진다.
하지만 전작과 후속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화와 규칙이라는 틀 아래 학생과 교사의 의견 대립과 소통과정이 주가 되는 구성은 유사하다.
글쎄, 뭔가 대단한 대결이 벌어진 건 아니었어.
그보다는 선생님들은 바닷가이고 아이들은 바다라서, 파도가 바닷가로 계속 밀려오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 선생님들이 결국 손을 들어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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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들이란 말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어.
(중략)
"아이들이 다 같이 우리만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내는 일이었으니까.
뭔가를 바꾸는 일이었거든."
p.74-75
전작이 그저 엉뚱한 말을 사용하게 아이들의 해달라는 고집스런 반항이라고 정의할수 없는 이유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바꾸고 싶었고, 그것이 가장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로 표출된 것일뿐. 단순히 펜을 프린들로 부르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문제와 의사결정의 과정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교사의 입장에서, 어른의 입장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당연한듯 전달되었던 교사-학생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이유를 다시 알려주는 따끔한 책이기도 하다.
'이게 정말 책일까'
니콜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에서는 오직 종이책만 허용된다. 매번 과제도 '단정하게 쓴 손글씨'로 기록한 보고서를 제출해야하고.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인터넷 검색이 자연스러운 학생들은 뭔가를 바꾸고 싶다. 특히 <파이썬의 철학>을 즐겨 읽으며 '이지선다식'으로 접근하는 세상에서 완벽함을 느끼는 조시는 니콜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 어느날 수업 시간에 책 대신 노트북의 전자책을 준비한 조시와 친구들.
니콜 선생님은 니들이 들고 온 것은 화면에 모양을 만들어 내도록 프로그래밍된 비트와 바이트일 뿐이리고 말한다.너희들이 가지고 온것은 책이 아니라 전기가 끊기고 화면이 부서지면 혹은 기계의 온도에 따라 사라질 지도 모르는, 학년말에는 반납하면 사라지는 것이라며. 하지만 종이책은 '책값을 내고 산 순간부터, 내 이름을 써 놓을 수 있는 내 것. 배터리도 필요없고 평생동안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 자식들이나 손주들하고도 같이 볼 수 있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전자책은 종이책과 똑같은 정보를 담았을 분 아니라 모르는 단어도 바로바로 찾아주는 책.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 글의 크기도 잃어버리면 다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최신 기술의 산물이다. 이 좋은 것을 수업중 쓰지 못하게 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다. 아이들도' 노트북 vs구닥다리 책' 컴퓨터 족, 컴퓨터 팀 화이팅으로 분위기를 몰고가며 조시를 지지하기 시작하고~ 선생님은 전자책 속 원서와 다른, 수많은 오타를 지적하며 왜 이런 오류가 생겼을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널리 퍼지게 되는 매체가 전편에서 '방송국'이었다면 후속작에서는 학급 학생의 '유튜브 채널'이 이용된 점도 현실감 넘친다.이제 학생이 사전의 시작이자 전개, 결말까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여전히 공들여 읽고 써야하는 이유
조시는 불현듯 깨달았다. 알맞은 낱말을 찾는 것을 알맞은 코드를 쓰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찾아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딱 맞아 떨어진다.
조시는 또 6학년 첫날부터 니콜 선생님이 자신을 프로그래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을 들여 글쓰기를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13
손가락만 까딱하면 쉽게 정보를 찾고 그 정보를 옮길 수 있는 세상. 이것으로 배움을 끝났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전자책 속 오류를 바로 잡는데 뛰어들며, 변함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읽고, 써야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정말 쓱 넘겨 알아낸 것들이.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야.
내가 전자책에 틀린 곳이 있다고 너희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은 스스로 배우는 게 좋기 때문이야.
스스로 탐험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궁금해하고 스스로 찾아보면서,
그래 맞아. 너희한테 말해 줄 수도 있었어.
p.123
배움의 과정에서 전자책이나 종이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배움은 ' 스스로 질문하고 궁금해하는 것을 찾아보는 과정. 그 자체를 탐험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그 배움의 과정에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결국 교실에서 '살아 남아야할 것들'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뭔가를 말하는 데에는 백만 가지 다른방식이 있었다.
p.203
'불필요한 낱말은 생략하라.'는 글을 쓸 때도, 코딩을 할 때도 아주 유용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조시는 대화에는 다른규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바네사와 이야기 할 때는, '말은 많이 할 수록 좋은 편이다.'라거나, '세상에 불필요한 말은 없다.'라거나, "잘했어.", "고마워."같은 말이 특히 그렇다. 그런 말은 두 배로, 어쩌면 세 배로 쳐주어야 한다.
p.211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장면에서 제대로 말하고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이 존중되어야하는 세상에서 기계에 의존해 빠르고 편한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이 책의 주인공에 얽힌 비밀은 반드시 이 책을 손에 잡고 '읽어서' 만나보길 권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크은 화면' 속 세상을 걸어서 만나러 가서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을 더듬어 보길!
가르친다는 것은 근사한 삶의 방식, 겸허한 봉사의 삶이야.
내 시간이 잘 쓰이고 있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다른 사람이, 특히 나이가 어린 사람이 인생의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니?
그보다 더 높은 목표는 바랄 수 없단다.
지칠 때도 있지만, 놀랄 만큼 뿌듯하지.
p.254
개인적으로 이 책이 '위대한 선생님들, 용감한 아이들, 그리고 언어의 힘에 대한 헌사'란 평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의 편지에서 학교에서 흔들릴 때마다 이 구절을 잘 봐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작년에 온책읽기로 읽었다던 <프린들 주세요>에 이어 <프린들파일>을 읽어줘야겠다고. 교사의 품격은 함께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데서 나온다고 믿으니까.

원서표지도 궁금해 찾아보니 이영림 작가의 표지가 새삼 더 친근하고 읽고 싶게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거나 다시 읽어보며 좋을 책들은 <샬롯의 거미줄>과 <트리갭의 샘물>이 두 책도 지금의 우리 아이들과 곧 만날 아이들과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책 속에 이 두 책을 언급한 것은~ 좋은 책을 거듭 읽히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