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바탕에 반짝이는 녹색빛.
흩날리는 버드나무 잎. 묵직하게 자리잡은 글씨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흑빛에 끌려서 일꺼에요.
한결같이 간결하고 딱 떨어지는 재료보다
다소 뭉뚝하고 힘주기에 따라 달라지는 재료로 낙서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목탄으로 그린 표지 그림이 좋았습니다.
표지 가득 자리 잡은 단단한 나무 줄기가, 그 위로 흔들리는 잎들이, 그리고 더해진 작은 아이 그림 속에 어떤 그림이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근데 제목이 <목탄> 이라니~
너무 직설적인거 아닌가? 부제로는 나무의 영혼을 담다? 처음엔 이 제목 속 숨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끼적임을 좋아하는 제게 이 책은
처음엔 그냥 궁금했고
덮으며 나도 모르게 보내준 목탄을 꺼내고 있었고
덮고 나니 그리고 싶다. 또 그리고 싶다 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죠.
나무를 태웠는데 재가 남는게 아니라 목탄이 남다니.
그리고 인간의 손에 의해 기어코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다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알고보니 내 손 안에 있었던 거군요.

나무의 영혼을 담은 재료, 목탄.
그리면서 문득, 목탄으로 그리는 행위 자체가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천히 손에 힘을 줬다 폈다
어떤 순간에 힘을 꽉 줬다가 또 느슨하게 빼줄 땐 빼줘야하고
쓱 쓸어 내리던 길이 뭔가가 되있고
언뜻 보기엔 선 하나로도 그럴 듯해 보이지만
쌓고 쌓다보면 더 깊어지는 그림.
때로는 이미 그려진 선 위로 손을 뻗어 쓰다듬고 토닥이는 순간도 필요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고
때론 오점처럼 보여 싹 지워버리고 싶은 그 부분마저
한 장면이 될 수 있는 목탄.
그리고 그런게 삶이 아닐까.
한바탕 놀다보면 손은 검어지고
가루는 날리지만
티끌하나 묻히지 않고선 종이의 질감을 느낄 수 없죠. 빈 공간도 자연스레 채울 수 없구요.

나무를 그리다보니 오늘 미술시간에 아이들과 사라지는 동물들에 대해 그렸던터라 '목탄으로 그렸으면 더 좋았을걸' 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목탄은 그 어떤 것보다 자연을 그릴 때 참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저 바라만봐도 좋은 나무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품은 의도대로
책을 읽고 나면 나무에게 고마워지고, 나무와 더 함께 하고 싶어서 그리고 싶어질 거에요.


출판사에서 함께 보내주신 활동북과 목탄은 이 책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손으로 마음으로 담으라는 뜻 같아요.
일부만 그려진 그림을 채워 넣다보면 목탄의 매력에 다시금 빠질 듯 한데, 전 나중에 학생들이랑 수업시간에 해보려고 그 위에 그릴 순 없었어요.
아이들 손에서 목탄은 어떤 그림을 그려낼까 궁금해지네요.
여담으로 제가 반한 부분은 행여나 찍은 도장이 번질까 휴지 한 장을 살포시 눌러 함께 보내주신 마음.
곱게 오래오래 , 여럿과 함께 넘겨보겠습니다.
*이 글은 제이포럼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