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관한 책.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싶어지는 책.
우리 모두는 ‘책을 씨’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서평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홀린 듯이 신청한 책. 평소에 고전
소설과 그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책을 뒤쫓는 소년』 또한 기대가
컸다.
『책을 뒤쫓는 소년』은 책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고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포도청
까마귀들에게 할아버지가 잡혀간 뒤, 홀연히 나타난 섭구라는 여인과 함께 책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 ‘책을 씨’. 섭구와 함께 들르는 마을에서 책을 씨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섭구와 책을 씨가 책을 보관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마무리된다. 이를 두고 섭구는 ‘책을 쓴다’라고
표현하는데, 책을 씨는 그런 섭구의 말이 알 듯 말 듯 어렵기만
하다. 그렇게 여섯 마을을 거쳐 한 권의 책을 써낸 책을 씨와 섭구는
‘홍 선생의 도서관’ 으로 향한다.
홍 선생의 도서관에는 세상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가 제각기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있었고, 섭구와 책을 씨가 몸으로 쓴 책 또한 도서관의 일부가 된다. 그들이 겪은 일이 한 권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섭구는 책을 씨에게 너라면 앞으로 더 좋은 책을 써 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이내 홀연히 사라진다. 책을 씨는 그제서야 섭구와 자신이 함께 한 여행이 무엇인지, 그리고 몸으로 책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책을 씨와 섭구가 여섯 마을을 거치며
책을 모으는 에피소드들의 전개 양상은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약간의
고난-순조로운 책 수집으로 끝나는 정도. 또한 섭구의 존재와 그가 하는 말 또한 상당히 모호하고 아리송하기만 해서, 책을 읽는 중에는 ‘그래서
섭구는 정체가 뭔데? 뭐야 이 판타지같은 상황은?’ 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씨와 섭구가 각 마을마다 겪는 에피소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작품들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거나,
고전이 창작될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들이다.
고전이나 고전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를 창작한 점은 상당히 신선했지만, 각 마을에서 벌어지는 6개의
사건은 짧고 단순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설적인 재미를 찾고자 한다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작가가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며 끊임없이 던져주는 질문에 있다. ‘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해보게
된다. 섭구와 책을 씨의 모호한 대화에서도, 그리고 그들의 이상하고 기이한 모험을 통해서도.
사건의 전개는 단순하지만 책 속의 표현과 그 속의 이야기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이다.
이 책의 또다른 감상 포인트는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표현들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 섭구 씨,
이 마을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
“ 언어로
표현하기 쉬운 냄새는 아니야. 마른땅에 막 내리기
시작하는 안개비 같은 냄새라고 해야 할까, 이른 봄
피어난 동백이 깊은 밤의 어둠을 이기지 못하고 툭툭 떨어지는 냄새라고 해야 할까?
책을 씨,
미안해. 내
표현력으로는 제대로 설명을 못 하겠어.”
이야기 속에서 안개비와 동백의 향기가 풍기는 듯한 표현이다.
『책을 뒤쫓는
소년』은 청소년 소설이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은유와 상징이 청소년들에게는 모호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서, 막상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조금 미묘한 위치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여러모로 유익하게 활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학교 수업시간에 이 책을 읽히고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좋을 것 같고, 학생들에게 본인만의 책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써 보게 해도 좋을 것
같다.
섭구와 책을 씨의 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책을 쓰기
위한 모험을 앞두고 있는 책을 씨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인생은 모두 제각기 한 권의 책이며,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온 몸으로
책을 써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뒤쫓는
소년』은 우리에게 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책에 관한 책,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싶어지는 책. 우리 모두는
‘책을 씨’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로 그늘진 뜰에 여름새들이
지저귀고 있더군요.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쳤지요. “이게 바로 내가 말하던 ‘날아갔다 날아오는’ 글자요,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문장이구나. 아름답게 어울린 색깔들을 문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이보다 더 훌륭한 문장은 없으리라. 오늘 나는 진짜 글을
읽었구나!”
(「경지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연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