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청 - 깊고 깊어 짙은 빛깔일수록 참으로 좋다!
어쩜 저 포장마차 감성을 저렇게 예쁘게 잘 나타냈는지,
면지를 열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데 꼭 포장을 걷고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최상의 재료를 구하러 갈 때 조차도 땡땡이 원피스와 프릴넥카라 크롭 블라우스를 갖춰 입는 멋쟁이 달토끼들은 패션 뿐만 아니라 요리의 맛과 질도 최상의 컨디션을 추구한다. 그에 비해 음식 값은 어찌나 소박한지, 돈벌려고 하는 장사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청으로 담그는 맛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고 많은 것들 중 하필 ‘구멍’청이란 말인가 싶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소재로 깊은 울림과 위안을 주는 백희나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겉모습만 보면 작고 귀여운 곰돌이를 납치할 것 처럼 생긴 달토끼들,
희번뜩한 눈알 너머에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듯 하지만 진심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참 다정한 존재들이다. 귀한 구멍청을 엄청난 양의 떡과 함께 먹어치운 곰돌이는 솟구치는 야성을 누르고
다시 마음을 다독이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왜 하필 구멍청인가
마음에 구멍 하나 누구나 품고 산다.
구멍하나 없어 보이는 남들을 보면서 내 구멍이 너무 크고 깊어 보이기도 하고,
그 구멍을 메울려고 오만것들을 구멍에 던져 넣어보기도 한다.
술, 작고 반짝이는 것들, 백, 사람들과의 숱한 만남, 맛있는 음식 등등... 순간을 사로잡지만
구멍의 빈 자리를 절대 메꾸지 못할 것들로 말이다.
하지만 구멍 그 자체를 오랜시간 정성을 들여 기쁜 마음으로 달이고 달이면 맛 좋고 몸에 좋은 구멍청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는 그걸 메워야 행복해질거라 생각하며 살아온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심지어 깊고 깊어 짙은 빛깔일수록 참으로 좋다니!
이제 내 마음에 뻥 뚤린 구멍을 잘 들여다 봐야겠다.
깊고 어두우면 음 이것 참 좋은 재료로구만 하면서 정성껏 달여봐야겠다.
좋은 것은 나눠야 하는 법.
구멍청을 같이 읽을 요량으로 반 아이들에게 백희나 작가의 모든 그림책을 다 읽어주었다.
구멍청은 그 대미를 장식할 최신작 ㅋ
기대 가득한 얼굴로, 표지를 열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깊은 이야기를 아이들이 같이 즐길 수 있을까? 잠깐 염려했으나 역시 좋은 그림책은 늘 그러하듯 읽는 사람 각각에게 알맞은 재미와 감동을 준다.
눈물이 똑 떨어질 것 같은 곰돌이의 눈망울과 주절거림에 다같이 안타까워하고, 구멍청과 떡을 양껏 먹고 본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는 곰돌이의 모습에 박수를 쳤다.
식당을 떠나는 곰돌이의 뒷모습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바라보면서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걸 아쉬워하며 그림책 속에서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자 누가 봐도 별책 부록처럼 들어있는 ‘구멍청 레시피 북’에 환호했다.
그리하여 4교시는 미술 연계, 나만의 ‘청’ 만들기다.내 마음을 달래주는 무언가를 재료로 청을 만들어 보았다. 레시피북을 참고해서 만드는 방법과 재료의 특성을 상상해봤다. 그리고 오려붙이고 글로 적어보기만 하는데도 직접 만드는 것처럼 신나고 재미있고 화기애애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5교시는 음악시간이 되었고, 리코더로 <랄랄라> 주문을 연주해 보고 노래로도 불러보았으며 그림책에 코박고 토끼들의 동작을 분석하여 <달여달여>춤도 춰보았다.
달여달여 춤은 정말... 마지막 랄라- 부분이 포인트 ㅋㅋㅋ
우린 여드레동안 노래하고 춤출 수 없으니 여덟번 반복해보자 했으나
12살 어르신들은 6번 정도 해보더니 이거 보통 정성으로는 8일씩이나 출 수 없는 춤이라며 쓰러지셨고 ㅋㅋㅋㅋ 남은 20분동안 머리를 싸매고 각자의 청 만들기 노래를 작사 작곡도 해보았다.
청 만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래를 어서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들이 아주 대단했다.
달빛청을 만든 한 소녀는 본인만큼이나 단아하고 정성 가득한 노래를 완성해서 모두 다같이 이 곡을 불러도 보았다. 결국 시간안에 마치지 못한 ’청 노래‘ 완성하기가 오늘의 숙제였는데 수학 익힘책 숙제보다는 낫지 않냐며 서로를 다독이며 하교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만들어 올 멜로디가 기대된다.
올 해의 독서 크루들에게는 그림책값으로 쬐꼬만 소감문 한장씩을 받고 있다. 열심히 책값을 적어 내는 아이들에게 "너희도 혹시 곰돌이처럼 마음에 구멍이 있니?" 질문했더니 아이들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없는 것 같다며 고개를 흔든다. 안심이 되었다. 난 있는데! 하면서 한가지 말해줄까? 헤아리다 보니 아이구 수도 없이 많다. 한참 허공을 눈으로 더듬다 “선생님은 40년이 넘게 살았잖아~”했더니 애들도 웃고 만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크고 작고 깊고 얕은 구멍들이 생기겠지만 곰돌이처럼 자신만의 구멍청을 꼭 챙겨 양껏 먹고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 속 구멍에 헛헛함이 느껴질 때 선생님과 읽었던 구멍청 이야기가 떠오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