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인간 이시후
snowya 2025/07/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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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 인간 이시후
- 윤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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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 - 2025-04-04
: 3,449
희귀병에 걸려 냉동된 열두살 소년이 40년 뒤에 깨어나 만나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
가족에게 닥쳐온 슬픈 사건들, 모든것이 변했지만 나만은 여전히 40년 전 그대로인 상황에서
12살의 몸과 마음을 가진 시후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내용과 설정은 사실 조금 뻔하다. 제목과 뒷표지의 줄거리를 보면 결론까지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영주 작가의 저력은 이 뻔할수도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개연성있는 사건 전개와 복잡한 인물들의 감정묘사에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 느낌의 지후의 처지에 몰입하다보니 지후의 마음이 다치고 상할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두번째 읽으면서는 막대한 치료비는 둘째 치고 냉동되어 곁에 없는 형을 책임져야 했고,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요양센터에 아빠가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정후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훕!’하고 숨을 멈추고 눈물이 차올랐던 부분이 있다.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는 계속 걸어갔다. 정후 생각이 나서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듯 쓸쓸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놀라운 걸 깨달은 것이다.
정후를 껴안은 적이 없다. 한 번도 없었다! 맙소사, 왜 그랬지? 정후가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형인데 먼저 안아주면 될걸. 못 할 건 또 뭐야? 형이면서 동생을 껴안은 적이 없다니. 우린 40년이다 떨어져 있었는데!
146쪽
“내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엄마는......”
“이 바보야!”
소리를 빽 지르자 정후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갈색 눈이 엄마를 똑 닮아 있었다. 아픈 나를 보며 울고 있던 엄마의 눈. 그 눈이 언젠가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나만 없었어도 우리 가족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수백수천의 밤들. 나는 정후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해. 네 탓이 아니야.”
정후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는 반복해서 힘주어 말했다. 꼭 나 자신에게 말하듯이.
“네 탓이 아니야.”
정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볼에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후가 긴 시간 홀로 감당했을 고통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148-149쪽
시후가 돌아온 40년 뒤의 세상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일까?
시후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40년 전의 세상이 그럼 더 좋은 세상이었을까?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숱한 발명과 발전과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것을 차치하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발전된 의학기술로 희귀병을 치료하고 몸을 살려냈지만 뒤죽박죽인 세상속에서 삶이 제자리를 찾게 돕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러니 ‘좋은 세상’이냐 아니냐를 논할 수 있는 기준은 그 세상에 사랑이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이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모티브인 ‘바나나 팬케이크’,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로는 마트에서 바나나를 볼 때마다 저걸 사다 좀 얼려놔야할까? 싶다 ㅎㅎㅎ 흔하디 흔한 바나나가 멸종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 못했겠지. 늘 곁에 있던 자식이, 형이 어느날 희귀병에 걸려 살아 있어도 곁에 있지 못한 상태로 40여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겠지. 시후와 바나나를 얼린것은 가족 모두의 ‘사랑’을 얼린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녹인 시후가 만난 세상은 처참했지만 그래도 살아갈 만 한 것 아니었을까? 시후와 바나나가 녹을때 그 가족의 사랑도 함께 해동되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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