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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님의 서재
  • 우리가 모르는 낙원
  • 박서영(무루)
  • 16,200원 (10%900)
  • 2025-05-22
  • : 2,928
'무루 작가님 만큼 그림책을 융숭하게(정중한 태도와 극진한 사랑으로) 대하는 분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작가님의 깊고 너른 사유의 세계 속을 거닐며 아름다운 책들을 천천히 만나보고 싶습니다.'

책표지, 작가와 출판사 이름까지. 단숨에 매혹되어 리뷰어 신청을 했다.

그림책을 몇 번 읽고 나서 얼마든지 예쁘고 다정한 말로 리뷰를 쓸 수 있다는 걸 알아챈 뒤, 그림책 얘기하는 걸 삼갔다. 그림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듭 펼쳐볼수록 의미는 풍부해지고 사유는 더 뻗어나가기 때문이었다.

5년 만에 책에서 다시 만난 작가의 어조는 더 세심하고 진중해진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가 한 권 한 권 그림책을 다시 펼쳐 보는데 어찌나 좋던지.

<모두 가 버리고>에서 냄비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장면과 눈동자와 시선 처리만으로 이이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낸 에바 린드스트룀에 반했던지라 첫 챕터부터 훅 빠져 읽었다. 같은 장면에 멈춰 오래 생각에 잠겼을 작가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이가 나만은 아닐 터. 같은 그림책을 좋아하고, 같은 등장인물에 애착을 느끼는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간질거리고 뜨듯해진다. 한강 작가가 쓴 '빛과 실'의 이미지가 그림책 세계로도 환하게, 튼튼하게 연결되는 듯하다.

어떤 책은 알지 못했던 사연을 알게 되고(까치밥나무의 열매), 촘촘한 의미를 놓치며 봤던 책은 다시 빌려보기도 했다.(나의 오두막)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안 켜켜이 쌓인 슬픔과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가도록 가만가만 등을 두드려주는 작가의 손길을 상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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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은 독자에게 언제나 재독을 요구한다. 아무리 단순하게 그려졌다 하더라도 그림책의 그림은 반드시 다시 읽었을 때 더 잘 보이는 맥락과 의미를 지녔다 새롭게 발견된 이야기와 이전의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오답노트 같은 것이 아니다.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 숀탠은 ‘이야기란 우리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답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그림책은 때때로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보여준다. 글과 그림, 낱장과 시퀀스, 넘기고 멈추고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의 진실이 이야기로 완성된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은 이야기가 언제나 하나의 초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모두를 환대하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오솔길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 저마다 진실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가모르는낙원
#무루
#오후의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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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깊고 너른 이야기를 미처 읽어 내지 못하고 있다가 그림책의 한 장면이 소설 한 권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놀라며 읽었던 적도 있다.
#한달에한권시와그림책 도 그런 조심스러움을 담아 만든 모임이었다. 한 달 내내 그림책을 보고 또 보는 동안 깊어진 건 그림책을 분석하는 안목도, 그림책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해설도 아니었다. 그저 그림책 속의 인물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구석구석 숨겨둔 작가의 다정한 마음과 살뜰한 응원의 흔적에 살아갈 힘을 얻었을 뿐이다.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 댁에서 지낸 이야기도,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파트도 참 좋았다. 좋은 어른을 눈여겨 보는 시선과 ‘타인을 복잡하게 이해하고 섬세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일’을 ‘지적인 노력’으로 이해하는 마음에도 깊이 공감했고.
사려 깊은 어른이 등장하는 호리카와 리마코의 <바닷가 아틀리에>를 슬며시 작가님 곁에 놓아드리고도 싶었다.

나는 낙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던가? 작가의 말대로 ‘낙원을 눈앞에 두고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낙원은 언제나 미래형 문장으로 쓰일 것’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림책을 읽는 시간들 속에서 종종 낙원을 엿본 듯싶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이야기 속 소녀가 진흙으로 빚은 작은 새를 소중히 손에 쥔 그림을 좋아한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게 해 주고, 더 나은 나를 꿈꾸게 해주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새를 서로에게 내보이며 함께 다정히 나이 들어가는 곳,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새로 꿈꾸게 된 낙원이다.

#무루
#우리가모르는낙원
#오후의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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