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아르고>라는 영화를 봤다. 어 이거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인지 이아손의 아들 아이손인지가 대권을 쥐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헤라클레스처럼) 함선 아르고호를 타고 떠나는 그 이야기인갑다, 게임으로도 나오고 그리스신화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니까, 하는 정도로 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왠걸, 이 영화는 그리스신화의 아르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물론 메데이아 공주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1979년 이란에 억류된(정확히는 억류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인 몇 명을 탈출시켜야 하는데, 갖은 노력 끝에 채택된 아이디어가 이란을 배경으로 <아르고>라는 영화를 찍는데 장소 헌팅 등을 위해 입국하여(입국은 정보부 요원만 하고) 서류조작을 한 다음에(캐나다 여권으로), 비행기편으로 빠져나온다는 얘기이다. 어쨌거나 사람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후반부의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는 정말 탑승하여 비행기가 뜨기만을 기다리는 한 사람의 승객으로 감정이입되어 손에 땀을 쥐고 볼 수 있었다. 신화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그래도 영화이름이 <아르고>니까,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황금양모피를 습득하여 과제를 해결한 이아손이 떠날 때 콜키스 왕의 딸 메데이아도 동행을 하는데, 이들은 아르고호를 타고 탈출하면서 메데이아의 오빠를 데리고 간다(납치인지 동행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가 추격하자, 오빠를 살해해서 시신을 토막내어 바다에 뿌림으로써, 아버지는 아들의 사체를 수습하느라 추격이 더뎌지고, 그맇게 콜키스의 땅을 벗어나는 장면, 다시 얘기해서 영화 아르고와 아르고호가 등장하는 신화는 무관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스릴만은 닮은 점이 있었다. 어쨌거나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라스트 신이 끝나자 곧이어 불이 켜지고 관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도 옆 사람들 자리 비켜주느라고 일어나서 빈 좌석에 앉아 이들은 엔디 크레딧을 어떻게 활용했나(평소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관찰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많은 관객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3쯤이 빠져나가고 텅 비어갈 즈음, 미국의 전 태통령 카터의 음성과 자료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아로고 작전은 미국 카터 대통령 재임시-그해에 우리나라에서는 광주민중항쟁이 발발했다- 진행된 일로 미국 입장에서는 통쾌한 성공이겠으나 국제사회의 여론을 감안해서 봉인한 사건이었던 것, 그것이 시효가 만료되어 개봉된 것을 기사로 다루고 그 기사를 읽은 감독이 영화화하기 시작했으며, 이 영화와 관련해서 이란에서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고, 카터 대통령도 한 차례인가 이란을 방문했다는 그런 내용들이 엔드 크레딧에는 담겨 있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하는 자막이 맨 앞에 나오기는 했지만, 상상에 의한 해프닝이 아닌, 역사 속 한 장면이었다는 점과 연관 짓는 중요메시지를 영화 아르고는 엔티 크레딧을 보게 하는 <미끼>로 끼워넣었던 것이다. 어쨋거나 마음이 무지 바쁜 우리 국민들, 그렇게 바쁜데 어찌 이토록 한가하게 영화를 즐기려 오셨는지, 화장실 용무가 바쁜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화장실에 가거나 곧 출발한 고속버스를 타려는 것처럼 쏜살같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더라.
엔드 크레딧은 흔히 엔딩 크레딧이라고 부르는데, 참으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시간도 상당히 길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요즘의 엔드 크레딧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스크린에 'The End'가 뜨면 불이 켜졌다. 이탈리아 영화는 'Fin', 홍콩영화는 '劇終'. 영화의 라스트 신 다음에는 이 마침표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제작진/출연진 소개는 도입부에. 영화에 투입되는 자본 규모가 커지면서 필요한 인력들도 점점 늘어나자 오프닝에 그 명단을 하염없이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 이름. 엔드 크레딧 시초는 1956년도 할리우드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 당시 기준으로 블록버스터였던 작품이라 적지 않은 인력이 투입되었고 그들 모두를 소개하기 위해 엔딩 크레딧이라는 장치를 처음 도입. 그러나 정착은 196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을 거쳐 서서히 일반화.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주제곡 두세 개를 온전히 다 들어야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엔딩 크레딧이 길어진 첫 작품은 리처드 도너의 1978년도 영화 <슈퍼맨>이었다. 거의 8분 가까이. 당시의 관객들은 꽤나 놀랐을 것. 이렇게 기나긴 엔딩 크레딧이 대세가 되면서 '히든 컷'처럼 관객들을 끝까지 자리에 앉혀두기 위한 장치가 개발되기도.
정리하면 위와 같다. 그런데 나는 생각해본다. 내가 혹은 나의 지인이 이 영화에 참여했는데 이름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거두절미하고 '이영애 매니저 ***'라는 이름까지 등장하는 영화에 관여한 숱한 사람들, 협조해준 단체, 장소제공에 대한 감사 등등 엔드 크레딧에 포함된 많은 정보들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인 것이고,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물심양면의 노고에 감사를 표해야 할 시간이 엔드크레딧이 있는 이유이고, 또한 뒷풀이(향연)의 시간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책 얘기는 언제 시작하냐고요? 네, 지금 시작합니다)
<그리스로마에세이>는 4권의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이 쓴 에세이, 그러므로 철학에세이라고 부를 수 있나, 라고 질문하면 그럴 수 있는 것들을 묶은 말 그대로의 그리스 로마의 주옥같은 에세이들을 모은 그리스로마 철학에세이모음이다. 첫번째로 나서는 주자가 '철학을 잘 읽어주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곳곳에 주옥같은 명언들이 등장하고 서양 명언이나 격언들로 회자되는 것 가운데 데이터를 내보면 출처가 <명상록>인 경우가 가장 많을 정도로 대단한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제작된 그리스로마에세이를 펼치다가 새로운 발견을 했으니, 그것은 명상록의 서두가, "~덕분에 나는 ~을 갖게 되었다" 류의 헌사, 보통 책이라면 맨 앞에 한두 줄 씌어있기 마련인 내용들이 1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필자)가 오늘 여기에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나는 이런 고마운 분들의 덕분에, 그러므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다. 나는 이런이런 분들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씁니다와 아주 대조적일 것인데, 감사를 표하는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평정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2권부터는 한번에 소화하기는 힘들 정도로 당시의 그리스철학의 이런저런 풍조를 담고 있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1권의 감사사연들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는 저자인 아우렐리우스와 동일시되는 어떤 경험 속에서 다음 권의 책 내용으로 빨려들어가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앞서 엔드 크레딧을 길게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가 상업화되면서-다 나쁜 것은 아니다- 투입 자본과 규모 면에서 전문(집단)가들이 숱하게 결합하면서 엔드 크레딧은 길어졌지만 그것을 영화 서두에 소개하기는 너무 장황하여.. 그러나 철학자 황제는 과감하게 책의 서두에 오늘의 나를 잊게 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를 한 장으로 만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99개(숫자는 중요하지 않다)의 감사가 들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옮긴이 천병희 교수는 17면의 주2에서 "~덕분에 ~을 하게 되었다"는 그리스 원전에 없는 정동사를 역자가 삽입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는 배웠다" 또는 "나는 습득했다"는 말을 삽입하는 이들도 있단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말씀을 듣기 전에 주기도문을 읽듯이, 사찰에서 법회를 할 때에 경을 독송하는 사전의식이 진행되듯이 명상록은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나의 지금 여기를 있게한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를 영화의 엔드 크레딧 분량의 목적성 글을 앞세움으로써 독서하는 공간과 시간을 경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황제는 이 글이 출판되어 널리 읽히는 것을 전제로 쓰지 않았다, 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혼을 치유하는' 세네카, '로마의 최고 지성' 키케로, '최후의 그리스인; 플루타르코스의 주옥같은 철학에세이들을 한 자리에서 마치 명절의 '종합선물모임'처럼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이 책에는 있다. 그리고 명상록 서두의 감사잔치는 이 책 전체의 독서를 의미있게 하는데 압도적인 역할을 해주는 구성이다.
나는 이 글을 고전읽기모임을 진행하는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 덕분에 나는 그리스와 로마의 지성들을 만난다. 고전읽기모임은 선생님의 안내강의를 토대로 논의한 결과 이 책을 첫번째 텍스트로 선정했고,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부터 읽고 토의하기로 했다. 정년은 쉽게 연장되지 않고 한계수명은 늘어나는 이 때에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역설이 아닌 현실이 되어 있는, 키케로의 책 덕분에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