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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작품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고 사안이었는데 <경향신문>에 신형철 님이 이런 글을 썼더군요. 잘 읽었고요. 지인들끼리 이곳에서 관련해서 토론을 해볼까 하고요. 발제문을 대신해서 올린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쓴 글도 검색이 되더군요. 일단 이 글부터..

[문화와 세상] 박근혜 혹은 안티고네 신형철 | 문학평론가 2012-09-27 21:11:33ㅣ수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272111335&code=990100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관련 기자회견을 보면서 느낀 비애가 이 글을 쓰게 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말투는 거의 기계적이었다. 불과 몇 달 만에 역사관이라는 것이 바뀔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녀에게 그 기자회견은 고통스러운 자기 부정의 연극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좌파인사들의 전향선언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군부독재 시절의 저 악명 높은 사상전향제도는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준법서약제도로 대체됐는데, 군부독재의 퍼스트레이디가 이제와 자기 신념을 일부 부정하며 전향을 선언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기자회견을 보고 난 뒤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소위 '오이디푸스 3부작'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이디푸스 3부작'은 <오이디푸스 왕>,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로 이어지는 가족사 비극이다. 오이디푸스는 타고난 지혜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지만,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부친살해와 근친상간 때문에 왕국이 도탄에 빠졌음을 깨닫고 자신의 눈을 찌른 뒤 왕국을 떠난다. 추방된 맹인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최후를 맞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킨 이는 그의 맏딸 안티고네였다.

3부작에서 2부까지의 내용이 이와 같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의 이야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를 떠올리기 전에 내가 두 부녀의 삶을 세부까지 일일이 대조해본 것은 물론 아니다. 두 아버지 모두 한 나라의 왕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다가 추락했지만, 테바이의 왕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처벌했고 유신체제의 대통령은 부하의 손에 암살됐다. 이것은 큰 차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하건 사랑과 존경을 포기하지 않은 두 딸은 닮았다. 박근혜 후보에게서 눈 먼 아비를 부축한 채 벌판을 떠도는 안티고네를 연상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안티고네>까지 읽은 이라면 이와 같은 비교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를 지적하게 될 것이다. 아비의 저주 탓인지 그의 두 아들은 권력을 놓고 전쟁을 벌이다 모두 죽는다. 두 아들 중 하나는 적국에 투항해 조국을 침공한 터다. 배반자에게까지 장례의 예를 갖춰줘야 할 것인가. 테바이의 왕 크레온은 이를 금지하지만 안티고네는 국가의 법보다 친족 간의 인륜을 따르겠다며 두 오빠를 모두 매장하려 한다. 그녀는 끝내 처단되지만, 이 와중에 크레온은 부인과 아들을 잃었으니 그녀의 패배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안티고네가 비극적 영웅이라는 점은 대개 부정되지 않는다. 물론 배반자를 용인할 수 없다는 크레온의 단호한 태도는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안티고네를 죽게 한 그의 처사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가 독재자에 가까운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자면 그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도 않은 채 칙령을 공표했고, 공정한 재판을 거치지도 않고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안티고네가 영웅인 것은 그와 같은 독재에 저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레온의 두 가지 조처에서 유신체제 하의 악명 높은 긴급조치와 사법살인으로서의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단호히 선을 긋지 않고 이를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안티고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안티고네를 민주투사라 볼 수 있다면 그때의 안티고네는 (말장난이 용서된다면) ‘안티(anti)근혜’라고 해야 옳다. 유신체제가 조국의 배신자라 낙인찍은 당시의 희생자들을 온전히 매장하는 데 헌신한다면 그때 박근혜 후보는 비로소 안티고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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