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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r427님의 서재
  • 모멸감
  • 김찬호
  • 15,300원 (10%850)
  • 2014-03-19
  • : 6,251
우선 작가가 글을 너무 잘쓴다. 고급스런 어휘를 구사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아 작가의 지성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나를 기분나쁘게 하는 일들은 결국 나의 자존감이 낮은 문제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는데, 이런 책이 간과하는 것은 상대방이 정말 심각한 저질일 경우이다. 그냥 무시하려니 계속 마주쳐야하는 상황이라 결국 거울 치료가 정답인 경우를 많이 겪었는데, 똑같이 갚아주는 공정한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내가 마음이 불편해 진다.
2장에서는 한국 사회의 정서적 지형을 조감하면서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분석한다. 조선 시대에 형성된 귀천의 식과 신분적 우열 관념은 외형을 달리한 채 끈질기게 지속되어왔 고, 산업사회 및 소비주의와 맞물려 사람들 사이에 피곤한 경쟁으 로 이어졌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위신을 확인하려는 문화 역시 강한 관성으로 남아 있는 데 반해, 개인을 감싸주고 인정 해주는 공동체는 오히려 급격하게 붕괴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크고 작은 모멸감이 가중되고, 훼손된 자아를 보상받으려는 집단 콤플렉 스가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편협한 인종주의로도 나타난다.
3장에서는 인간세계에 나타나는 모멸의 존재 방식을 일곱 개 의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인간이 타인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 관계 맺고 소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격을 나누고 가치를 매긴다. 물론 일의 세계나 공식적인 시스템에 서 기능과 효율을 위해 그러한 서열을 세우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영역을 떠나서 사람 자체를 본질적으로 위계화하고, 거기에 사회적인 명예나 실존적인 가치까지 결부시키는 것이다.- P12
상품의 종류 가 점점 늘어나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쏟아질수록 논리보다 감정 이, 이성보다 감성이 더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P28
인간은 그 사회가 마련한 일정한 기 준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습이 드러날 때 창피해하는 것이다.- P52
무의식적 모멸의 가능성과 함께 짚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순전히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과민하 게 반응하는 경우가 거기에 해당한다. 서비스업체 직원이 고분고 분하지 않다고 격앙하는 소비자, 어디에서든 특별 대우를 받지 못 하면 난색을 표하는 부유층, 하급자가 깍듯하게 떠받들지 않는다 고 호통을 치는 고위공직자들•••••• 그들은 상대방의 범상한 언행에 서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그로 인한 인지 부조화와 자괴감 을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한다. 모욕을 쉽게 주는 사회 못지않 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다. 그것은 또 다른 모 멸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P68
무시당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 지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 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P73
물론 이는 상위 1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상류사회를 풍 자한 개그지만, 그 ‘높은 세계‘에 대한 선망이 널리 공유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P89
언어는 생각과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현실을 반영하면 서 동시에 창출한다. 인간관계에 스며들어 있는 권력구조나 서열의식,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감정의 얼개가 언어를 통해 재생산 된다.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말들을 해부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사회의 자화상을 그려볼 수 있다.- P110
이렇듯 한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격변은 전통적인 신분제도를 빠르게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자각적인 청산이 아니었다. 봉건 적 신분제에서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루어낸 성과도 아 니었고, 구체제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진 지배세력이 스스로 개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불발로 끝났고, 식민 지배와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물결이라는 외부의 힘에 의해 낡은 질서가 깨져나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권력의 시스템이나 사회 구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거나 논쟁하지 못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비전을 창조하면서 현실과 맞붙어 싸운 경험이 박약했다.
그 결과, 겉으로 보이는 신분제도는 사라졌으나 신분의식은 온존하게 되었다. 혼란기를 통과하면서 기존의 지배 질서는 무너졌지 만, 귀족적 차별의식은 오히려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전공적인 신분 만남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다만 그 물이 전근 대적인 신한 질서가 아닐 뿐이다. 그 대신 학력, 빈부, 외모, 지워 등 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차이들을 중심으로 귀함과 천함을 구분하고 자기와 타인을 위아래로 자리매김한다. 감정노동 을 흑독하게 만드는 의식구조도 거기에 맞물려 있다.- P126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 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심보는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이어져오 고 있다. 한 가지 예로 조선 시대에 양반들이 승려들 위에 군림했던 상황을 들 수 있다.- P127
개인주의는 여러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매긴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한국에는 그런 의미에서의 개인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남에 대해 신경을 너무 곤두세운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뉘는데, 한편으로 타인에게 필요 이상 의 관심을 보이면서 참견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 다른 한편 으로 자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너무 예민하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인터넷 공간에서 맞물려 악플을 양산한다. 우선 다른 사람 에 대해 너무 쉽게 험담을 늘어놓고 당사자에게 악담을 던진다. 그 렇게 약을 올리면 상대방이 발끈하거나 움츠러든다. 이따금 일파만 파로 사회가 요동을 치기도 한다. 악플러 입장에서는 재미가 쏠쏠 하다. 예상했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받으면서 자기 효능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P141
이처럼 삶은 급속하게 개별화되는데,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개인주의는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었더라 도, 자기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견딜 만 하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나름의 인생철학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고, 고독을 즐겁게 채울 수 있는 내면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주의가 정착된 사회라면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기에 불필요한 관심을 갖거나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절 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저마다의 삶의 양식과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 한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개별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사회질서를 수립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P142
사회적 결속이 느슨해지고 사적인 영역에서도 친밀한 관계가 어려워지는 상황, 그렇다고 개인주의적 세계관이 형성된 것도 아니 어서 타인의 시선에 늘 전전궁궁하는 삶은 모멸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 얼개는 이러하다. 고립된 개인들이 자기 정체성이 박약한 가운데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행복과 불행, 오만과 콤플렉스 사이 의 왕복을 거듭한다. 귀천* 이나 우열의 가파른 위계 서열에서 상 위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실 제 자신이 처한 현실이나 맞이하게 될 미래를 직시하면서 스스로를 투명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천박한 통념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힌다.- P143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 더러운 세상의 일부가 되어 일등이 아니면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조차 그런 가혹한 기준을 적용한다.
모멸감의 일정 부분은 자업자득이다.- P145
의도는 선하다. 가족이나 친지들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버겁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 기에 무시하거나 정면으로 반박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한마디 하겠는데‘라면서 시작되는 충고 라고 한다. 물론 쓴 약이 양약이듯 고언뽑금이 꼭 필요한 경우가 많 지만, 어설픈 단정과 주제넘은 조언이 짜증을 불러올 때도 적지 않 다. 상대방이 놓여 있는 처지, 어쩔 수 없는 상황, 거기에서 겪는 일 들과 그에 대한 느낌 등에 대해 무심한 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자 기식대로 도움말을 주는 것은 모멸감을 자아내기 쉽다.- P191
‘불쌍하게 여긴다‘는 말의 뉘앙스를 살펴보자. 얼핏 상대방의 어려움에 깊이 동감하는 듯하지만, 냉철하게 뜯어보면 열등한 존재 로 대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불쌍해 보이는 것을 원 치 않는다. 동정의 시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부각시키면서 불쌍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자존감을 포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거리나 전철에서 구걸하는 이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타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에는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이깔려 있다. 행복에 대한 강박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자기보다 불 행한 사람들과의 대면이나 비교는 상대적인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자신이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물론 그러한 비교를 통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감사하고 평범한 일상 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단지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배경으로만 여겨진다면, 한낱 대상이나 수단에 머물고 만다. 나와 그들 사이에 인격적인 관 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P194
모든 가치가 돈으로 매겨진다 해도, 사람은 그것을 벗어난 세 계를 여전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다만 너무 자주 그런 세계를 잊고 살 뿐이다.- P236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사람들은 그렇 듯 자존심이 무너지는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그 지위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는데, 자신은 언제까지나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P268
‘정신승리법‘이 초래하는 자가당착, ‘긍정의 배신‘을 늘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타인의 모욕을 받으면 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도 있다. 경멸은 자기의 정체를 비춰 주는 시선이 될 수 있다. 『서준식 옥중서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 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P283
누가 보든 보지 않는 자기의 양심과 도덕률을 따르는 것이 명예의 본질이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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