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논조에 공감할 수 없지만 주옥같은 날선 비난들이 매력적인 책이다.
문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민주 건달‘ 로 보인다. 과거에 잠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도 덕적 우월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그들. 하지만 사실은 그런 도덕적 우월감이 더 위험하다.- P19
오만함도 층위가 있다. 조금이라도 겸연쩍어할 줄 아는 오 만함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내면의 절제나 외부의 견제가 작 동하지 않아 공격성까지 띠는, 뻔뻔한 오만함도 있다.- P25
우리에게는 내 부모처럼 나도 노동자이고, 따라서 내 자식 도 노동자가 되리라는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 주력부대가 형 성되어 있지 않다. 반면 유럽은 1848년 2월 혁명으로 앙시앵레 짐이 무너지고 특권계급이었던 귀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 면서 유산자계급과 무산자계급이 확연히 분리되어 지금까지 이 어져왔다.
노동자는 많지만 노동자 의식은 드문 곳에서 부당하고 억 울한 일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 식하기 어렵고, 연대 의식의 토대 또한 탄탄해지기 힘들다.- P36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로 운 사람들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 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볼테르- P41
세상에는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 다. 다만 인종주의적 언행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나와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대상을 차별 배제• 억압하고, 마침내는 혐오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P55
애당초 나에게 조국 가족이 벌인 ‘기회의 사재기‘가 기소 요건 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물음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교육계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불평등의 세습‘을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해 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이 한 사회의 생산력을 확장시켜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준다고 믿 을 근거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 르디외와 장클로드 파스롱(Jean-Claude Passeron)이 "교육은 사회 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반세기 전의 일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설령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해도 그는 이미 개천 사람 들을 대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P67
앞으로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갈 구성원에게는 자본주의에 관한 교육, 특히 노동 인권에 관한 교육이 주체성과 비판성뿐만 아니 라 연대성 함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주체성 없는 자유로운 시민은 형용모순이다. 연대성이 없으면 공동선 •공익을 추구할 수 없고, 비판성이 없으면 법의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적 권력과 금력이 지배하게 된다.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은 민주적 공간인 학교에서 이 세 가지 요체를 함께 배우고 익힌 다음 각자의 자질 과 능력에 따라 사회에서 자기 직분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우리 공교육이 경쟁 지상주의에 압도되어,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은 형성하지 않고, 기능적인 능력만으로 학생들 을 서열화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간디는 일찍이 7대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 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 앙‘을 꼽았다. 우리 공교육은 특히 ‘인격 없는 지식‘과 ‘인간성 없 는 과학‘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우리의 교육 현장은 배움의 터가 아니라 경쟁의 장이다. 아무에게나 물어보자. 학교에 왜 가 냐고?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사 람이 누구이며,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여 상위권 대학에 가 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가? 이 경쟁의 과정 에서 인격이나 인간성은 설자리가 없다.- P85
우리는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좋은 대상에 익숙해지면 권태나 싫증을 느끼고, 나쁜 제도에 익숙해 지면 별 저항 없이 더 나쁜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며, 우리를 둘 러싼 공간에 익숙해지면 그 공간에 대한 판단력을 잃게 된다.- P96
조국 사태로 함께 동굴에 갇힌 진영과 논 리들,"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마이클 린치 의 『우리는 맞고 너희는 들렸다.)를 시연한 ‘빠‘와 ‘양념‘의 정치들, 검찰과 언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작 정치의 소음들만 가득 하다. 정치 현상의 놀라운 과잉에 비해 정치는 실종되었고, 그리 하여 사회는 보듬어지기는커녕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P106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 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것은 분 명하다. 남의 온정과 시혜가 필요한 상황, 그것 자체가 이미 인 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의 존엄성은 사적 온정과 시혜의 영역에서 공적 분배와 권리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삼권 등으 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약자의 권리를 신장해왔다. 다시 말해, 비 참하거나 고단한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엷어진 만큼 공 적 분배와 권리가 확장되고 노동자의 권리 또한 신장되었던 것 이다.- P117
뒤트롱의 기회주의자처럼, 나는 착취자도 두렵지 않 고 선동자도 두렵지 않아요. 나는 유권자들을 믿어요. 내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지요‘.- P126
오늘날 박 정권과 박 정권을 떠받치는 수구 세력이 일본의 식민 체제 아래에서 조선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공감한다 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학살과 고 문 행위에 대해서는 왜 그리 둔감할까. 아니, 둔감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들이 바로 학살과 고문, 간첩 조작 등 국가 폭력 행위의 주체였거나 거기서 싹튼 세력이기 때문이다. 실상 아베 신조에게는 가소롭게 비칠지 모른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고문한 자들이 식민지 조선과 조선 사람을 유린했다고 일본을 손가락 질할 수 있나? 더구나 일본의 식민 체제에 빌붙어 사적 안위와 영달을 추구했던 자들이?- P132
무릇 못난 자일수록 자신의 무능을 탓하기에 앞서 남부터 탓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그에 맞는 능력과 책임 의식 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P156
개인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 비해 언론의 자유가 위 축되었다고 느낄 만큼 자기 검열을 하며 이 글을 쓴다. 사모펀드 가 불법이냐 아니냐를 떠나, 사모펀드와 사회주의자라는 조합은 내게 사회주의에 대한 능멸로 느껴졌다. 나는 원외 소수 정당인 노동당의 당원으로서, 지금껏 사회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 다. 문재인 정권의 고위 공직자 중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고 칭한 조국 법무장관이 사모펀드와 연관된 유일한 인사라고 한다.- P174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상징폭력은 피지배자에게 사회적 위계를 정 당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물리력에 의존하 지 않고도 복종하게 하는 지배 기제다. 몸에 가하는 폭력과 달 리, 상징폭력은 피지배자에게 지배자의 세계관, 의식, 욕망을 내 면화하게 한다. 그 결과 피지배자는 열등감, 즉 스스로를 부정적 이거나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와 서민은 돈 과 권력을 가진 사람, 정치인, 연예인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관심 을 갖는 반면, 자기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 서민에게는 무관심하 다. 관심이 없으니 노동자 서민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에는 분노 를 느끼지 않는 반면, 좋아하는 정치인과 연예인이 겪는 작은 고 통과 불행에는 열화와 같은 분노를 느낀다. 프랑스처럼 공교육 등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곳에서도 상징 폭력이 관철된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조국이다!" 같은 구호가 별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서초동 집회 참석 인원이 200만 명이든 20만 명이든 11시간 압수수색에 분노 했다는 그들 중에 100여 일 동안 강남역 사거리 철탑 위에서 허 공의 새가 된 김용희 씨,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에도 위험의 외 주화로 일터에서 생명을 잃고 있는 하청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석 달 넘게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관심 을 갖고 분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