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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r427님의 서재
  •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김멜라 외
  • 6,930원 (10%380)
  • 2024-03-31
  • : 40,812
몇 년간 젊은작가상 작품집이 계속 실망스러웠는데 올해는 모든 작품이 다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오히려 대상 작품이 좀 실망이었는데, 4년 동안 출판사에서 밀어주는 것에 피로를 느끼는지, 퀴어 작가가 대범하게 성적 코드를 드러내는 방식이 좀 질린 건지, 하여간 아쉬웠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외국인 노동자가 안전불감증 작업장에서 사망한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둔 주호와 서로를 괴롭히는 반 아이들에게 멸망해 가는 지구를 걱정하며 환경 문제를 환기시키려다 오해를 산 희주는 수영 기초 초급반에서 만난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연습하지만 기초 수준 이하의 실력 때문에 수업의 진행을 방해하다 어느 날 강사의 짜증과 욕설이 섞인 고성 폭격을 받는다. 아무 악의 없이 수영장을 나서다 강사를 걱정하는 주호를 보며 회원들은 단체로 나와 강사교체를 비롯해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해내며 결국 수영장을 개선한다. 노동문제, 환경문제를 대하는 주호와 희주의 태도는 강경하지 않다. 격하게 분노하는 계약직 강사에게도 불안정한 신분이라는 사정이 있었다며 그를 염려한다.

<보편교양>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고등학교 교사 곽은 인문학 수업을 준비한다. 보편적인 교양 수업을 목표로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채우기 위해 선택했을 뿐 아무도 관심이 없는 중에 특권층의 자녀이자 모범생 은재만 수업을 따라온다. 마르크스의 책으로 교육을 하지만 곽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은재 학부모로부터 정치 편향적인 서적을 가르친다는 민원을 받아 난처해 지는데, 은재의 입시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마르크스 교육의 정당성을 입증받아 난관을 극복한다. 은재는 서울대에 진학하고 곽은 공로를 인정받아 다음 학기에도 인문학 수업이 연장된다. 곽이 추구했던 보편적인 교양의 본 취지와는 무색하지만 곽은 결과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파주>
어느 날 윤정은 남자친구 정호에게 군대후임 현철이 찾아와 정호가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현철은 가혹행위에 대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일년 동안 매달 백 만원씩 송금하지 않으면 정호의 회사에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윤정은 그러한 협박을 당하는 남자친구 정호보다 현철에게 마음이 쏠린다. 무덤덤한 현철과 달리 가해자 정호가 오히려 더 격분하고 반성도 하지 않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윤정은 자신을 평가하듯 바라보는 학원 수강생들의 고통스러운 시선이 생각난다. 일년 동안 돈을 입금하고 난 뒤에도 윤정의 눈에 정호는 마음이 홀가분해졌을 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는 기미는 없어보인다. 물론 정호가 성찰하지 않는 것은 윤정의 시선일 뿐이고, 정말 현철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철은 마지막 모습까지 침울해 보였고, 정호는 현철과 합의 후 활기를 되찾는다. 세상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하는 사고방식은 경계해야 하지만, 누군가는 잘못을 저지르고 배상을 하면 죄를 씻었다는 착각을 한다.
가해자에게 평생 속죄하고 비참하게 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해자들에게 정말 참된 깨달음을 줘야하는데, 돈으로 갚는 합의를 속죄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악당이 행복한 결말을 맞는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진 적이 있었다. 나라고 악당을 비난할 자격이 있진 않을 것이다. 당하고만 사는 사람은 당해주는 죄를 지은 것이라고 답답해 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삶의 굴곡 없는 순탄한 삶을 살면서도 우울증에 걸리는 고통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왜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폭력에 무감해지도록 만들까.

<반려빚>
사람을 숙주로 이용해 먹는 바이러스같은 서일이 등장한다. 이 단편은 또 앞의 단편과 상반된 입장이 등장하는데, 이번엔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동성 애인 서일을 위해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을 통해 돈까지 빌려준 정현은 서일이 돌연 잠적해 혼자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 그러던 중 서일이 이혼 후에 다시 찾아와 빌린 돈을 위자료로 다 갚을테니 자신의 임시 거처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데, 정현은 또 서일을 받아줄 뻔하지만 정현의 친구 선주가 나타나 서일의 머리채를 잡으면서 상황이 정리된다. 정현은 빌려준 돈은 결국 다 받았지만, 서일과의 일을 통해 자신에겐 로또같은 행운보다는 누군가와 진실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쉽게 마음을 주게 되고 또 이용을 당하게 된다. 멀쩡하게 살아가려면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만큼의 공격성을 꼭 갖추어야 하나, 그 공격성이 없는 사람은 결국 정현과 같이 자기합리화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혼모노>
신빨이 떨어져가는 무당 문수 옆집에 신애기가 들어온다. 장수할멈은 문수에서 신애기로 옮겨붙었고, 자신의 고객인 정치인 황보까지 문수의 신빨이 다했다는 얘기를 듣고 신애기와 굿판을 벌인다. 배신감에 독기가 찬 문수는 황보의 굿판에 나타나 피튀기는 작두를 타며 할멈을 영접한 신애기를 압도하고, 황보와 그의 가족들은 문수를 우러러 본다. 문수는 진정한 신기를 뿜어내며 자신이 혼모노고 신애기가 니세모노(선무당)라는 것을 입증하듯이.
장수할멈을 영접하진 못했지만 신기보다 더한 기를 인간이 뿜어내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데 집착하는 현상을 꼬집고 있는데 작가의 필력에 재미까지 있다.

<언캐니 벨리>
언제부턴가 나이가 드니 젊거나 싱싱한 것들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의 느낌에 대해 정당한 기분인지, 누려도 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키가 140정도 되는 택시기사이자 화가이기도 한 화자가 부촌의 어느 집에 몇번 데려다 준 여자가 염산테러를 당했다. 그녀는 어느 노부부의 집에서 돈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수고비를 받는다. 그녀는 그 일이 편하다며 만족했고, 그들의 집에서 약물을 몰래 훔치기도 했다. 어느 날 그곳에 다른 남자 손님을 태워다 주던 중 그 남자손님이 공구통에 약물이 들어간 것을 들키자 당황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절대 화자에게 비밀이라며 누설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그 집에 들어갔다. 화자가 집을 어슬렁 거리다 노부인을 마주치고,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자들은 자신의 계산법에 따라 조금씩 더 챙겨기는 법이라며 화자에게 택시비 5만원을 건넨다. 그리고 그녀가 염산테러를 당하고 화자는 경찰의 조사를 받지만 특이한 혐의가 없어 조사는 간단히 마친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 노부인의 집으로 향하는 다른 여인을 택시에 태우게 된다.
"말은 항상 느리죠. 생각에 비하면 언제나 느려요."- P19
미시사를 포함한 세 권의 역사서를 읽고 ‘인간이란 자기가 살지 않은 과거는 뭉뚱그리는 관성이 있다‘라고 메모했다.- P115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머그잔에는 노인과 바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파괴될지 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P115
‘밀은 『자유론,에서 개인의 행동이 설사 그 자신의 이익과 상충되 는 듯 보이더라도, 그러할 자유를 보장하는 게 포괄적 공리에 부 합한다고 여겼다‘ 좋은 수업이란 훌륭한 예술품이 그러하듯 내 용과 형식이 일치해야 했다.- P124
딜레탕트 라는 호명의 모욕적 뉘앙스와 단순한 지식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 판적 견해와 박사과정 진학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저울질했고, 모든 사유의 방황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거슬러올라가 은재 와 은재 아버지와 교장과 동료들의 언사에서 사실과 의견을 분리 하였으며, 고전읽기 수업을 포함하여 읽고 쓰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삶 전반에서 자신의 패착을 검토했다. 이 세계와 학생들과 부 분적으로는 자기 자신까지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변호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았다.
‘나는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수업을 했다.‘- P140
그건 미워하는 것보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근데......너 무 무서워하다보면 미워지게 되거든요. 무서워하는 거랑 미워하 는 마음이 나중에는 잘 구별이 안 가더라고요. 그게 그거 같고, 굳 이 나눠야 하나 싶기도 하고.- P179
근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 더라고요. 이렇게 넘어가면 나는 다음번에 또 이렇게 넘어가겠 구나. 하는 생각.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상상하니 까 내 다음이 무서워지고, 내가 무서워지고. 무서워지니까 또 밉 고… 미치게 밉고. 이해 안 되겠지만 그래서 그랬어요. 전역하 고 나서 매일 생각했어요. 목 조르는 생각, 칼로 찌르는 생각. 그 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골라내다 보니 이렇게 시시해진 것도 같고. 그땐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어 떤 사람한테는 삼 년이 어저께 같아요. 그 생각에 묶여서 시간이 안 가요.- P180
연락이 끊긴 이유를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알게 되었을 때 정 현은 절망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고 자기가 무얼 잘못했나 자책했으며 이제 앞으로 사람을 어떻게 믿나...... 하고도 생각했 다. 앞으로는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 간이 흐르면서 정현은 자신에게 그런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현이 누군가를 믿고 안 믿고는 정현이 향후 만 들어갈 관계에서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정현이야말로 그 누 구보다도 신뢰 못 할 인간이었다. 정현은 자신의 신용 점수가 또 래보다 한참이나 낮다는 조회 결과를 자주 들여다봤다. 열심히 빚을 갚아왔고 딱 한 번 연체했을 뿐인데도 여러 군데서 빌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빌린 탓인지 신용 점수는 쉽게 높아지지 않았 다.- P211
정현은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행운을 그 런 데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 람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무런 값을 따지지 않고 셈하지 않고. 상대 또한 그런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어리 석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P228
이처럼 불공정해 보이는 인과는 낯설지 않다. 능력주의 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메커니즘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분이나 계급, 인종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오로지 개인의 능력 만을 평가 준거로 삼겠다는 능력주의는 언뜻 계층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차별로부터 거리를 둔 공평한 체제로 보인 다. 그러나, 노력한 자가 그 대가로 능력을 얻고 이를 인정받아 차 등적으로 대우받게 된다는 이 접근법은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은폐한다. 편향적으 로 축적된 부와 권력이 세습되므로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하기 어려우며 (유전 등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요소를 제외 하여도) 누구나 노력하여 재능을 얻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 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노력은 능력과 직결되 지 않는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녀의 능력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세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P287
문수에게 큰 재수굿을 의뢰한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와 주민들은 아 파트 재건축 승인이 가져다줄 부가 수익을 기대한다. 이들이 욕 망하는 대상은 각기 다르게 보이지만 모두 자본에 엮여 있다. 자 본주의는 끊임없이 자본을 추구하게 하고, 불안감과 모욕감을 적 절히 활용하여 이를 개인적인 욕망으로 착각하게 한다. 자본에 대한 욕망은 획득한 자본보다 더 큰 자본(궁극적으로는 자본의 무 한 증식)을 목표로 하기에 본질적으로 충족될 수 없음에도, 자본 주의는 이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갈망으로 보이도록 가장한다.
나아가 자본주의는 노력해도 결코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다 는 불가능성을 가리기 위해. 뺏고-빼앗기는 관계 안에서만 이 욕망을 사유하게 만들어 시선을 돌린다. 주어졌다 사라졌거나 혹은 주어지지않은 자본(또는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을 "빼앗긴"(259쪽)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정된 재화를 애초에 공평하게 누릴 수 없으므로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믿게 하며. 원 하는 대상이 주어지지않을 때도 지배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기보 다 그것을 누리는 구체적인 인물을 대신 원망하게 한다.- P288
내게 배려란 주로 상대편 사정이 급할 때 베풀어지는 것이었다.- P300
이 도시에 정착한 뒤부터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 사실 자체는 견딜 만했다. 문제는 시선이었다. 노골적인 익명의 시선. 정수리 에서 발아래로 움직이는 눈동자.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은밀한 혐오.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는 견뎠다. 나카스 거리에 서 있던 순 간을 떠올리면, 못 견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견디는 건 옳은가. 익숙해지는 건 필연인가. 나는 아직 답을 몰랐다.- P308
나는 불쾌한 기분 탓에 얼굴이 굳었다. 그 일이 편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타인의 시선을 받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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