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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r427님의 서재
  • [전자책] 쓰게 될 것
  • 최진영
  • 11,760원 (580)
  • 2024-06-19
  • : 1,450
SF소설을 자주 쓰던 최진영 작가의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인간의 쓸모>에서 완전하게 태어나는 갤럭시존의 아랫단계 타운존의 안나가 인간다운 노고존을 찾아 나서는 것을 보며 완전함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개념인 것을 보여주는데, 디스토피아적인 <쓰게될 것>보다는 재밌었다.

<썸머의 마술과학>에서 아빠는 사기를 당해 가정의 불화를 일으켰고 두 딸 봄과 여름 중 맏딸 봄은 잘먹고 잘살아보려 했을 뿐이라는 아빠를 맹비난한다. <디너코스>에서 오석진은 정년까지 버티지 못하고 명예퇴직한 이후 주식으로 퇴직금을 탕진하지만 아내 김선영은 출판사를 그만두고 도배 기능사를 취득해 현장을 다니며 하루하루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오석진의 생일에 모인 딸들은 바리스타로 취직을 하려는 오석진에게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김선영에겐 현장일이 엄마의 품위에 맞지 않는 일인지 따지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부모의 실버인생을 위한 축배를 든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가장의 처량한 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제 구실을 못하는 가장들을 비난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들에게 이해와 공감은 없다는 것과 자신의 입장만 고수한다는 점이 불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유진>과 <차고 뜨거운>은 화자는 자신의 모순을 깨닫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 같다.
최유진은 친구 공미에게 대학생 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았던 매니저 이유진의 부고를 듣는다. 이유진은 품위있고 고상했으며 아르바이트생들을 리드하는 리더쉽이 있었다. 어느 날 이유진이 반지하방에서 사는 것을 알게 된 아르바이트생들은 더이상 이유진을 따르지 않았고 그녀의 품위있는 척하는 행동이나 비싼 향수 취향에 대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속물적인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했던 최유진은 결국 더 이상 그 공간을 버티지 못하고 레스토랑을 그만둔다. 당시 최유진은 이유진이 어른답게 자신을 무시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지도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최유진은 자신의 조카를 보며 자신의 어른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차고 뜨거운>의 화자의 가정은 불화로 가득했다. 아빠는 항상 나를 무시하고, 엄마는 나를 원망하고, 오빠는 하는 일 없이 인정받는 그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화목한 이모네를 부러워하다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딸 태양이를 낳았는데 엄마는 자신에겐 보이지도 않던 지극정성과 사랑을 손녀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쏟아붓고 육아에 참견한다. 손녀를 보다 허리를 삐끗한 엄마는 병원에서도 나의 속을 긁는 소리만 하는 사이 이모 내외가 병문안을 오는데 여전히 화목한 두 부부를 바라본다.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른 자신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이모 내외를 보며 가족에게 더이상 얽메이지 않겠다는, 세상에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채로운 장르의 단편이 묶여 있는데 주제가 소통의 지난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계급이 분리된 미래에서든, 가족간의 이해가 부족한 현재의 삶에서든.
이를테면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이해하며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영화 를 보면서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실감했을 뿐. 나는 그 정도의 속도로 내 인생이 흘러가길 바랐다.- P24
나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대화가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쟤 남자친구 서울대 다니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사람을 힐끔 바라봤으니까. 그렇게 예쁜가 생각했으니까. 그 연애 가 오래 갈까 의문을 가졌다가 서초동에 산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이해가 됐으며 말도 안 되는 박탈감을 느 꼈으니까. 그들의 관심사인 명문대와 강남과 명품 등에서 나는 엄청 멀리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나의 껍질을 자꾸 벗겨냈다. 모른 척하고 싶어서 아주 깊은 곳에 숨겨둔 나의 근성을 끄집어냈다. 나는 그런 대화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P29
내 말은, 친구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굳이 피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 너 여기서는 잘 지내잖아. 그럼 우리는 뭐야? 친구 아니야?- P30
근데 너 인도 갈 거라며. 거기서도 그렇게 물을 거야? 왜 이런 데서 살아요, 왜 이렇게 살아요, 묻고 다닐 거야?- P34
이유진은 우리를 크게 혼내야 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멍청한 것을 그만두라고 가르쳐야 했다. 그런 다 음 우리의 분위기를 예전으로 되돌려놓아야 했다. 이유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태고,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유진은 우리 중 가장 어른이니까.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유진이 정말 미웠다.- P35
어릴 때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쓴 적이 있다. 그땐 어렸으니까 어른스러운 척을 할 수도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쓸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제 뭔지 잘 모르고, 모르니까 긴장했 다. 긴장할 때 나는 좀더 이나를 신경 쓸 수 있었다.- P37
마흔 살의 이유진과 마흔 살의 내가 대화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P37
일상에서 만나는 타인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상대를 깔보지 않는 높은 교양과 섬세한 배려를 한 달에 두 번은 체험할 수 있으니까.- P39
타운존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비교와 평가다. 그것이 있어 타운존 인간들은 행복하고 불행하다. 따돌리고 협력 한다. 승배하고 험오한다. 목표를 세우고 자살한다. 타운존에 사는 이상 누군가보다 부족한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P78
증강현실을 이용하여 모와 버나드는 매일 데이트했다. 파티를 열고 여행을 떠났다. 물론 다투기도 했다. 권태 를 예방하고 애정을 복돋우기 위한 갈등이었다. 버나드는 적당한 순간에 모를 실망시켰고 언쟁을 유발했다.
그리고 반드시 감동을 줬으며 같은 일로 다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P81
회사에서 부장이 아무도 웃지 않는 징그러운 농담을 던지거나 납득할 수 없는 고집으로 아이템 진행을 복잡하 게 만들 때면 오나영은 아빠를 떠올렸다. 우리 아빠도 회사 다닐 때는 누군가에게 끔찍한 존재였겠지? 생각하 면 서글프면서도 화가 났다.- P99
오석진과 30년간 부부로 살면서 김영선이 터득한 정신 건강 증진 방법 중 하나였다. ‘그나마 다행‘ 부터 찾아 내기.- P100
퇴직하던 당시 김영선은 자조적으로 자기를 다 쓴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 김영선은 ‘되살아난 사람‘에 가까웠다.- P101
형제자매가 있어야 욕심도 배우고 경쟁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클 수 있어. 서로 위할 줄도 알고 나이 들어 외롭 지도 않고. 당장 키우기 힘들다고 하나만 낳으면 자기만 알고 못쓴다. 커서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해. 나중에 형제 없다고 부모 원망할 거야. 두고 봐라. 부모 죽으면 얘 혼자 남는 거 아니냐. 얼마나 불쌍하겠니.- P114
불행을 모으면서 안심하는 사람.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 다. 엄마는 내가 불행해야 안심할 것이다.- P114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아픈 건 모두 네 맛이라는 그 말들. 그들은 어쩐지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 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절대 아프지도 병들지도 않을 거라고. 나는 지쳐 있었다. 소리를 지르 거나 울 힘도 없을 만큼 고통에 파묻혀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아픈 사람들 천지인 이곳에서 제발 말조심하 라고 발을 구르며 경고하고 싶었지만, 사지가 고통에 묶여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잠시 지옥에 서 있 었다. 인간들의 지옥. 그들의 말은 나의 자책과 다르지 않았다. 내 잘못을 찾는 방법으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거지? 아프다는 이유로 잘못 산 사람이 될 순 없었다.- P134
그래서 엄마는 영혼을 믿어?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구부정한 자세로 한동안 정면만 바라보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그건 사람이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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